돈으로 산 후보,돈 달라는 유권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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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직 정식 선거날짜 공고도 되지 않은 광역의회선거가 벌써 전국 도처에서 타락·불법사례를 빚고 있어 경악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타락현상이 실정법과 유권자 및 후보자의 각성에 의해 초기단계에서부터 강력히 차단·규제되지 않으면 광역의회선거의 공명성과 지자제의 건실한 정착은 크게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불법·타락사례를 보면 과거 국회의원·대통령선거에서 있었던 악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공천을 따는데 거액의 뒷거래를 하는가 하면 유권자의 금품·향응요구에 시달리다 못해 환멸을 느끼고 사퇴를 선언한 후보자도 나왔다. 이밖에 갖가지 형태의 불법 사전선거운동이 난무하는 모양이다.
어찌 그렇게 못된 짓만 중앙정치를 닮아 가는가.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자조하고 개탄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30년만에 어렵게 만든 지자제가 이런 부작용 때문에 그 본질이 과소평가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우선 완벽한 것은 못되더라도 현행 선거법과 불법을 응징할 관계법은 엄정히 적용,집행되어야 한다. 공권력이 공안정치와 관련돼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무보수·명예직의 내고장 일꾼을 뽑는데까지 의심받아서는 곤란하리라 본다.
검찰은 여야를 가리지 말고,누가 봐도 공평하다고 느낄만큼 중립적 입장에서 단호히 법집행을 해주길 바란다.
아울러 여야 정당은 진실로 국민앞에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 한다. 도대체 정치권이 얼마나 썩었길래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 관할지역의 공천대상자들에게 1인당 5천만원씩의 뇌물을 요구하도록 방치될 수 있단 말인가.
검찰이 사실확인을 마치고 구속단계에 와 있는데 민자당은 꿀먹은 벙어리다. 전국 각 지구당에 유사한 사례가 수두룩해 할 말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내막적으로 묵인하고 있는 것인가. 거대여당의 도덕적 무감각을 다시 한번 개탄한다. 민자당은 솔선하여 관련의원을 징계하고 국민에게 사과함은 물론,이런 불법행위를 스스로 예방하고 퇴치하는 가시적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부산 동래에서 후보가 유권자를 원망하며 사퇴한 것은 우리 유권자의 수준,선거문화의 저급성에 내린 또 하나의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선거때가 되면 으레 유권자를 빌미로 금권선거의 행동대원이 되는 거래꾼들에게 후보자가 농락당하는 한 선거풍토의 쇄신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 꾼들은 우리 사회의 독버섯이다. 그렇지만 혹시 보통의 유권자들도 후보에게 표의 대가를 바라는 심리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살펴볼 일이다.
선거엔 으레 거액의 돈이 든다는 사회통념은 우리 유권자들이 아직도 금품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선거란 그 나라 국민의 평균적 수준을 획기적으로 뛰어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의회에 이어 광역선거까지 공명성이 확산되는 것이 우리 국민,나아가 국력의 수준을 높이는 것임을 국민 모두 깊이 새겨봐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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