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입니다/노대통령께 보내는 고언/김규동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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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야에 묻혀사는 일개 문인이 이 나라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께 이러한 충고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외람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국은 보통을 넘는 때이며 이 시점에서는 노대통령 당신자신의 충정에 의한 어떤 단안이 있기 전에는 아무런 해결책도 있을 듯 싶지 않기에 정치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만 몇가지 고언을 드립니다.
데모를 하던 학생이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지 열흘이 넘습니다. 그리고 이에 항의하는 세 학생의 분신이 있었고 수감중이던 한 노동자는 의문의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또 어제 아침 재야단체 간부가 몸에 불을 붙이고 서강대 옥상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들 기성세대는 모든 것이 무뎌서 감각이 없다고들 하지만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지요.
지금 학생들은 정권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이렇다할 시국수습책이란게 없습니다.
저는 공평한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지요.
학생들의 구호나 행동이 과격한 점도 있겠으나 그것은 젊은이들의 이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일단 보고 넘어가는게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6·29선언때의 패기를 가지고 개혁과 통일의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당신께서는 이번에도 구렁이가 담넘듯 위기가 우물쭈물 넘어가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정치 기술이라든가 무슨 묘책같은 것은 찾지 마십시오. 사랑입니다. 국민을 아끼고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입니다.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주겠다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국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87년 6월에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은 그래도 일루의 희망을 가졌던 것이지요. 그 때의 그 선언,그 결심을 환영했습니다.
이후 3년여 당신께서는 과거의 모든 악법을 폐지하거나 고치지 못한채 이른바 3당통합을 했고 강성 이미지만 심었습니다.
또 금융실명제며 토지투기·물가고·주택문제·부정부패·인륜의 타락 등 반드시 다루어야할 주요한 경제·사회문제를 뚜렷하게 국민이 납득하게 다루지 못했다고 봅니다.
새삼스러운 말씀입니다마는 대통령께서는 학생들의 데모를 우선 넓은 마음으로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권하거니와 대통령이 직접 싸움터같이 어수선한 대학이란데를 가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보시지요. 모르긴해도 대통령을 향해 감히 돌을 던지는 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극렬한 운동권 학생이라 해도 대화를 나눈다면 이해의 폭은 넓어질 것입니다.
모두의 목표는 사람답게 사는 참세상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꿈을 순수하게 가슴에 간직한 것이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만의 이익이나 행복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의 권익을,희망을,양심을 그들이 대신해 말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역사의 추진력은 더 많이,이 말썽많은 젊은이들 손에 쥐어져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때로 격렬하고 도를 넘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 우리 시민들의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그들을 폭넓게 사랑하고 어른답게 가르쳐야 합니다.
여야정치인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것이 적다는 것을 아십니까.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요. 택시를 타도,혹은 시장바닥이나 막걸리집 같은데서도 기성정치인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을 찌푸립니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지도적 인물에게서 권위,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는 때입니다. 왜 우리는 이와 같이 돼버렸을까요. 모든게 다 골깊은 불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인이 시 한편을 쓰면 4만∼5만원 받습니다. 목수가 하루 8만원,미장공은 7만5천원 받지요. 이에 비하면 시인의 노임은 형편없지요. 그나마 시한편 팔때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 거듭 합니다.
그것도 닭이 알낳듯이 자주는 못쓰는데 그래도 제값을 못받는 이 정신노동에 생계를 걸자니 자연 어려운 이웃들의 참상이 저절로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산책삼아라도 가끔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맞으러 거리에 자연스럽게 나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알게 됩니다. 이 사회에 고쳐야할 것이 많다는 것을….
개혁과 혁신,이것이 없이는 우리의 내일은 없습니다. 보안법 크게 뜯어고치고 수서사건같이 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또 용감하게 통일의 문호를 여십시오. 세계의 흐름은 우리에게 지금 통일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처럼의 이 역사적 전기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민주화를 과감히 실천해야 합니다. 민주화를 단행해 온 국민이 다 잘살게 되었다는데 어느 누가 당신을 적으로 돌릴 것인가요. 당신께서는 바로 이 나라 4천만 국민의 대통령이십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비롯,그간의 모든 실정을 들어 국민앞에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어둠을 원하지 않고 밝음을 바랍니다. 악이 아니고 선을,죽음이 아니고 삶을,민족의 위대한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은 도덕성의 회복입니다. 대통령께서 먼저 나서서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덕이 있는 큰 정치를 하시겠다면 먼저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정치인으로서,특히 한국같은 상황에서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참지도자라면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그같은 꿋꿋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두서없는 말이나마 몇자 적어 대통령의 아름다운 결단을 촉구합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실천을 보여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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