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가 여야 독점물 아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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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거법 개정에 기성정당이 명심할 일
23일부터 여야간에 시작된 지자제선거법 협상은 지난번 기초의회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명백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기존 정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게임의 룰을 보다 공정하게 보강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초의회선거법은 후보가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리고 유권자가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역의회건거법은 대부분의 내용이 기초의회선거법과 똑같으면서 정당추천 허용에 따른 무소속 후보와의 차별성 규정만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크게 보아 기존 정당이 당리당략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지자제의 근본취지를 살려 대의를 존중하는 자세만 갖는다면 협상을 통한 법개정이 결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사리가 이러함에도 불구,협상에 임하는 각 당의 속셈과 주장을 들으면서 과연 이같은 당위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인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각 정당이 미시적인 이해타산을 앞세운 나머지 대국을 그르치는 일이 없어야 겠다. 이를테면 민자당은 선거운동방법으로 실효성이 의문시 되는 합동연설회를 줄이는 대신 개인연설회를 도입하는 등 부분적인 손질만 할 속셈인 것 같다. 반면 신민당은 그들의 당세확장과 인물스카우트 편의를 노린 비례대표제 채택을,민주당은 젊은층을 겨냥한 선거연령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기존 정당의 이같은 입장이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는 한 생산적인 법개정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우리는 그런 사태진전을 경계한다.
이미 선거주무 기관인 중앙선관위도 국회에 건의한 바와 같이 지금 대다수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정당이 개입함으로써 모처럼 이룩한 기초의회선거의 공명분위기가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아울러 무소속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는 부분은 반드시 균형이 잡혀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정당후보의 경우 자신의 선거사무소 선거운동원외에 정당의 선거사무소·운동원을 둘 수 있고 후보의 소형인쇄물외에 정당차원의 인쇄물을 별도로 배포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정당후보는 창당대회·개편대회·합당대회 등을 통해 얼마든지 청중을 동원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같은 규정은 법체계상이나 정신상 명백히 균형을 잃고 있다. 이 모든 행위를 금지당하고 있는 무소속 후보가 법을 지키면서 선거운동을 하자면 숨쉬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는 해학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기존정당의 행태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참여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고 있는 건전한 시민단체의 활동을 눈여겨 보고 있다.
우리는 지금과 같이 기존 정당이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제선거를 기존 정당들이 독점하려 든다면 그 결과는 정치체제 전반에 대한 불안요인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제선거법 개정은 무소속에도 후보초청 토론회를 갖게하고 시민단체의 연대성을 표명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고쳐져야 한다.
그것은 독 기존정당의 기득권을 어느정도 양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그들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일지 모르지만 지방자치제의 건전한 육성을 위해,또 체제의 유연성을 높여 정치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선거법 개정이 필수적임을 여야정당은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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