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문제 걸려 「빈손 경협」/알맹이 없이 끝난 일­소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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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방 4도 협의 대상만 합의/종전이후 대립해소 첫발에 큰 의미/북 핵사찰 수락촉구등 한반도 거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일본에는 북방 4도 반환문제,소련쪽에서는 경제협력문제에 있어 각기 씁쓸한 결과로 막을 내렸다. 다만 일소정상은 양국 관계의 확대균형을 다짐함으로써 2차대전 이후의 대립관계를 완전 정상화하는 첫발을 내디뎠다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의 고르바초프 방일중 모두 여섯차례,12시간이상 할애된 정상회담에서 결렬의 위기도 거치면서 난산한 공동성명은 양국간 최대 쟁점이었던 쿠릴열도 4개섬을 둘러싼 영토문제에 대해 해결방안은 산출하지 못하고 단지 영토문제의 존재를 동문서에 최초로 언급하는 선에서 그쳤다.
일본이 이 문제에 관해 별소득을 올리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련측도 심각한 경제난 때문에 절실히 바라고 있는 일본의 화끈한 경협을 얻어내지 못하고 사실상 빈손으로 협상테이블에서 물러난 셈이다.
공동성명은 북방 4섬 문제와 관련,「양정상은 하보마이(치무),시코탄(색단),구나시리(국후) 에토로후(택착)의 귀속에 대한 영토확정문제를 협의했다」는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선에서 타협한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 국내의 여론이 영토반환에 선뜻 약속했다가는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의식,최소한 하보마이·시코탄 두섬의 반환을 약속한 56년 공동선언의 인정을 요구하는 일본측에 끝까지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원하는 기술협정」등 12개의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앞으로 일본이 재정·금융정책·생산성 향상 등에 협조하기로 했으나 당장 고르바초프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일본의 대소 경협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과거 일본인의 시베리아 억류문제에 대한 유감표명 ▲동북아시아 안전보장을 위한 일소간의 군사대화개시 ▲북방 4섬에서 소련군의 철수약속 등 준비한 모든 카드를 내보임으로써 일본의 극동·시베리아 개발참여 등 경제협력을 얻어내려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영토문제의 해결에 시종했다는 점에서 양국간의 큰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일본 경제계는 소련측이 모호한 표현을 통해 영토반환 약속을 회피한 점을 지적,일본이 대소 경제지원과 관련해 고수해온 「정경불가분의 원칙」은 앞으로도 지켜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내심 고르바초프가 바라고 있던 일본의 경제지원은 앞으로 영토문제에 대한 진전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가이후(해부) 총리가 보인 끈질긴 협상노력은 일단 평가한다는 입장이나 『실질적인 수확은 전혀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18일 회담이 거듭 난항하자 당4역 가운데는 『이런 상태에서 공동성명이 작성될 필요가 있는가』하는 불만이 나왔고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총리의 정치책임에 직결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오부치(소연) 간사장은 19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56년이래 모든 긍정적 요소를 활용하면서 건설적·정력적으로 작업할 의사를 표명했다』는 성명문구를 지적,『이는 당연히 56년 공동선언의 재확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기자클럽에서 가진 회견에서 『공동선언(56년) 가운데 국제법적 결과를 갖는 부분이 있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하보마이·시코탄 두섬의 반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이처럼 가장 민감한 영토문제를 두고 양국이 해석을 달리하는 「모호한」 표현을 담음으로써 오히려 이번 공동성명이 앞으로 양국간의 위화감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공동성명에서 한반도문제와 관련,양정상이 이번 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확보에 대해 큰 관심을 표명했다』는 대목을 포함한 것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책으로 공동성명은 ▲남북대화의 진전이 중요하다는 공통의 인식위에서 총리회담의 계속을 지지하는 한편 ▲일본측의 한소 국교수립 지지 ▲소련측의 일­북한관계정상화 노력을 평가하고 ▲북한의 IAEA 핵안전보장조치 협정체결을 희망한다는 뜻을 명기한 것이다.
소련측은 이번 회담을 통해 특히 북한이 핵사찰에 응하지 않는다면 북한측에 핵에 관한 모든 공급과 협력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이미 북한측에 알리고 있다는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북한에 「경고카드」를 내보이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통해 강조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안보구상」에 대해서도 언급,『쌍방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추진한다는 견지에서 안전보장면을 포함한 광범한 문제에 대해 대화와 교류를 확대해 나간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명시했으나 일본은 물론 미국 등도 미온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어 이 구상의 발전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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