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 1차관은 '빵 사다주는 대머리 아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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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인맥 만들기'가 능력계발 1순위로 꼽힌다. 미국의 한 쇼프로에서 시작한 인맥동원 게임인 '케빈 베이컨 게임'이 인터넷에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되고 인맥관리 십계명과 같은 지침서들이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게임이든 책이든 탄탄한 인맥의 근간은 훈훈한 인심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인맥보다 중요한 것은 '인심'=7년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외무부 차관보 시절 정부 중앙청사 내 하급 공무원과 경비원, 청소원들 사이에서 가장 친절한 고위공직자로 꼽혔다. 유독 그가 하급자들에게 인심 후한 고위 공직자로 비쳤던 비결은 뭘까. 당시 청사에서 근무했던 대부분의 응답자는 그가 출근길에도 반드시 차 문을 내리고 인사하고, 경비원들에게 일상에 대해서 물어보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상당수 응답자는 고위 공직자 중에 그런 전례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청사관리 공무원 김재복씨는 반 총장의 차관보 시절, 반 총장의 한쪽 다리가 차 안으로 다 들어가지 않았을 때 차문을 닫아 버렸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김씨는 "너무 놀라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반 차관보께서 웃으며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었다"며 수년 전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반 총장의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지금은 과거와 달리 동료와 하급자를 포함한 다면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인심 쌓기가 인맥 만들기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예라고 설명한다.

◇정부청사 '미스터 친절'은 누구=중앙청사 개관 36년이 되는 2006년 12월 현재, 중앙청사에서 하급자들에게 가장 정중하게 인사하고 배려하는 고위 공직자는 누구일까. 중앙청사의 하급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성, 그 가운데 하급자들에 대한 배려 여부를 조사했다. 50여 명의 청사 하급 공무원, 방호 경비원, 청소원들은 한결같이 "행정자치부 1 차관님이 가장 친절하다"며 입을 모았다. 그는 출퇴근시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식사는 하셨느냐"며 일상을 묻는다고 한다. 청사 탕비실에서 만난 한 여성 청소원은"1차관님은 우리가 청소를 하느라 쳐다보지 않아도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고 가는 분"이라며 "반말을 하는 법도 없다"고 말했다. 방호원 장세진씨는 "휴일 근무 때는 특히 더 신경 써서 고생한다며 안부를 물어주는 분이 1차관님"이라고 전했다.

현 행정자치부 최양식 1차관은 방호원들 사이에서 '빵 사다주는 대머리 아저씨'로 더 유명하기도 하다. 휴일근무 때 밖에서 고생하는 방호원들에게 빵을 사서 안겨주고 가는 일이 계속되면서 방호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불리는 별명이다. 그래서인지 최차관의 이름과 직위를 모르는 사람도 이 별명은 익숙하다. 최 차관은 "그분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 줄 몰랐다"며 "청사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인데 당연히 고마운 마음을 갖고 인사해야 한다"고 했다. 최 차관은 "술 안 먹고 차관 되는 게 술 먹고 목사 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술 안 먹고 차관 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인데, 최 차관은 술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인심을 쌓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최 차관은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은 동료와 하급자들이지 높은 분들이 아니다"라며 "청사에 출입하시는 높은 분들도 목 운동 좀 하시라"고 친절과 배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밖에 여성가족부 장하진 장관, 국가보훈처 박유철 처장이 친절한 고위 공직자로 꼽혔다.

◇따뜻한 스킨십=33년간 청사 정문을 지키다 27일 퇴직한 강여형 방호실장은 강영훈 전 총리의 친절함을 기억한다고 했다. 청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정승숙씨는 "지금 계신 분들도 친절하지만 반기문 총장의 따뜻한 악수와 고건 전 총리의 깍듯한 인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수많은 능력계발 지침 중에서도 1순위로 손꼽히는 '인맥 만들기'. 진정한 '사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심 쌓기'에 공들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정부청사 '미스터 친절'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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