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가 주름잡는다|6공 차관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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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3공·5공 때는 출세하려면 육사에 가라는 말이 있었다. 그 시절엔 그만큼 육사출신들이 요직을 많이 차지해 왔다. 두 차례에 걸친 쿠데타의 과실을 따먹은 것으로 몰수 있다. 그러나6공들어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 사회 요소요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서울대법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법대는 전국에서 관료가 되려고 몰려든 엘리트들을 수십 년간 매년 수백 명씩 배출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들이 중심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 곳이 드물게 됐다.
심지어 5공 때는 정치권에서도 육사출신과 요직을 나누어 가져 민정당이「육법 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 서울대법대 출신들은 사법부·행정부는 물론 국회에도 37명이나 진출해 있다.

<국회에도 37명 진출>
행정부에서 서울대법대 출신의 활약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차관회의다. 24개 부처 중 10개 부처가 서울대법대 동문들이어서 이들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발에 차이는 것이 서울대법대』라는「겸손한 자랑」까지 나온다.
행정부의 최고 의결기관은 국무회의지만 실제로 부처간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회의다운 회의를 하는 곳은 차관회의다.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대부분의 안건은 이 차관회의에서 조정된다. 지난해 토지공개념을 심의함 때는 무려 6시간이나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이렇게 격론을 벌인 끝에 국무회의에 상정되면 일부 정치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이 무수정 통과된다. 현재 차관회의에 참석하는 서울대법대 동문은 최인기 내무(20회·62년 입학)·김두희 법무(16회·58년)·조규향 교육·김용균 체육청소년(이상 18회·60년)·이병석 농림수산(l2회·54년)·박용도 상공(15회·57년)·윤성태 보사(19회·61년)·윤동윤 체신(15회·57년)·정문화 총무처(17회·59년)·한수생 환경처(11회·53년)차관 등 10명이다.
이렇게 서울대법대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자 비슷하게 승진해 온 동기생들끼리 한꺼번에 몰린 적도 있었다. 김두희 법무차관의 16회 동기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려 9명이 차관을 거쳤는데, 작년 초에는 동기생 7명이 한꺼번에 또는 엇바꿔 차관회의에 참석,「16회 동기 회」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김영진 전 내무·이상배 전 내무·서정신 전 법무·김두희 법무·이병기 전 농림수산·임인택 전 상공·손종석 전 총무처·강용식 전 공보처·김옥조 전 보훈처차관 등 이 그들이다.
이들 중 차관회의 멤버로 남아 있는 사람은 김두희 법무차관 밖에 없지만 다시 박용도 상공·윤동윤 체신(15회)차관과 조규향 교육·김용균 체육청소년(18회)차관이 각각 동기생으로 차관회의 멤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차관회의가 워낙 부처간의 인식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얽혀 논란을 벌이는 곳이다 보니 동문이고, 동기고 관계없이 서로 설전을 벌이기 일쑤다.
지난해 공휴일축소 때도 식목일의 공휴일 제외문제를 놓고 총무처와 경제부처는 과소비풍조와 경제적 효과 등을 이유로 삭제를, 산림청과 공보처 등 일부부처는 산림녹화 및 한식성묘라는 민족 전래의 풍속을 이유로 존 치를 각각 주장하며 맞붙었었다.
이 때문에 16회 동기들간에도 의견이 양분되어 논쟁에 가담했다.
김용균 체육청소년차관은『법대출신은 합리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해관계로 싸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논리에 지면 바로 승복하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서울대 법대출신들은 긍지와 자부심이 있지만 파벌을 형성하지는 않는다며 『우리마저 파벌을 만든다면 나라가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동문이라는 것이 업무처리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 차관 자신도 동기생인 조규향 차관의 교육부와는 실무의견 조정에 직접 전화통화를 자주하고, 서로 양보할 때가 많다고 인정했다.
정부의 고위관리인 K씨는 뿐만 아니라 평소 자주 접촉하다 보니 쉽게 정보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등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l6회 동기들은 3년 전부터 차관급이상 행정부관리·검찰·변호사·실업계 등 30여명이일 과 육을 합한 천 맥 회라는 친목회를 만들어 매월 16일 모임을 갖고 있다.

<정치과 출신과 쌍벽>
행정부내에서 이들과 쌍벽을 이루며 최근 새로운 학벌을 형성, 부러움을 받고 있는 것이 서울대 정치학과다. 차관회의에 유종하 외무·강현욱 동자부차관과 육사출신으로 학사편입 한 송한호 통일원차관 등 3명이 있다.
그러나 정치학과는 국무회의에서 더 세다. 노재봉 국무총리를 비롯해 최각규 부총리·최호중 통일원 부총리·이상옥 외무·정영의 재무장관등 국무위원 서열 1위에서 6위까지 중 내무장관 1명을 빼고는 전원이 정치학과 출신이다.
더구나 노 총리·최각규 부총리·이 외무장관 3명은 동기생이어서 법대 16기의 차관동기 6명 이상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대법대 출신의 K차관은 절대적인 졸업생 수를 봐도 행정부내에는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며 막강한 정책결정력을 갖는 전통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무위원은 정치적으로 갑자기 발탁될 수도 있지만 주로 직업관료로 채워지는 차관에는 고시를 거친 법대출신들이 대거 포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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