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분리선거 하나 안하나/평민 반대·여 내부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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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청와대 강행입김 거세/민주계 방향선회 여부 관심
지방의회선거를 3월말에 기초단위부터 분리실시하려던 정부·민자당 수뇌부의 정국프로그램이 야당의 강경저지에 앞서 내부 의견 불일치를 빚어 적전분열로 소동을 빚고 있다.
민자당은 28일 당무회의에서 정부와 합의한 「3월말 기초(일반시·군·구),5∼6월중 광역(서울·직할시·도)의회 분리선거」 일정을 확정하려 했으나 당내 민주계 의원들의 집단반발에 부닥쳐 오는 5일까지 시한부 대야 협상을 벌이기로 방침을 후퇴했다.
청와대는 민자당의 당론확정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분리실시관련 유인물을 찍어놓고 대통령 담화문까지 준비해 놓았다가 이같은 돌출사태가 터지자 크게 당황,불쾌감을 토로하면서 대야 협상의 타결조건을 더욱 강화,분리실시 강행방침을 재확인해 민자당이 한바탕 소란스러울 전망이다.
정부측은 기초단위에서는 합동연설회의 폐지는 물론 정당 개입소지가 있는 20여개 조항을 뜯어 고쳐야한다는 구체적인 협상조건을 당쪽에 통보했는데 이는 평민당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분리선거 강행명분 축적용이라는 인상이다.
청와대쪽의 강경대응론은 기초단위 우선선거에 맞춰놓은 「수서」 수습정국운영의 틀을 당내부의 반발이 있다고 해서 고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정국관리의 단호한 자세가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로선 지난번 당3역교체 과정에서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의 주장이 먹히지 않고 김영삼 대표의 주장대로 인선이 돼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났다고 보는 만큼 이번에 또 민주계의 반발로 당방침이 흔들리면 노대통령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고 보고 있다.
노대통령이 28일의 한 저녁모임에서 직접 불쾌감을 표현하는등 청와대측의 대응은 강경하다.
청와대측은 민주계의 반발에 대한 불쾌감을 당측에 표시하는 한편 민주계 돌발행동의 배경을 여러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기초단위 분리선거 구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노대통령의 후반기 권력관리를 맡은 청와대 신주류와 김대표의 합작품이다. 김대표가 수서파문이 한창일 때 정치복원을 강조한 것은 기초의회선거 분리실시 방침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김대표의 민주계가 돌발행동을 한 것을 놓고 조직적 사전계획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날 민주계의 박용만·황낙주·박관용 의원 등이 제기한 반대논리는 ▲동시선거의 기존입장을 포기하는 대 국민명분이 약하고 수서국면타개보다 확대재생산될 우려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선거자체가 부담이라는 것으로 전략적 명분을 강조했다.
이날 김대표가 노대통령과 합의를 본 기초우선 선거방침을 공식 당론화하지 않고 소극적 회의운영을 한 흔적이 있어 그의 정치적 손익계산 내용이 바꿔졌을 가능성도 관심을 끌고 있다.
김대표는 국면전환을 위해 기초단위 우선선거에 집착했으나 평민당이 투표거부 유도등 보이코트로 맞서면 경색정국의 정치적 부담이 우선 자신에게 쏠릴 것이라는 판단때문에 동시선거쪽으로 방향선회를 모색중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3월 기초선거를 강행할 경우 4월 임시국회가 그 후유증으로 보안법등 개혁입법의 합의처리는 커녕 여야의 전면충돌로 인해 정국파행쪽으로 치달아 6월의 광역선거가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민주계 일각의 시각을 김대표가 수용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자제를 통해 단계적으로 당조직을 당장악,후계구도에 접근하려는 김대표의 대권전략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일부에선 김대표가 지난해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식현장을 방문,지자제정국을 개막시켰던 전례에 주목,양 김씨의 제휴에 의한 5월말 동시선거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민주계 일부의 반발에 민정계의 오유방 의원이 나서 『대야 협상이 부족하다』고 동조한 것에서 나타나듯 당내 설득과정이 충분치 못했고,분리실시가 야당의 반발에 마주칠 경우 오히려 혼란만 일어난다는 걱정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신주류들이 분리실시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고 평민당도 동시선거를 포기할 수 없어 양측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된 것 같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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