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한 전후 경제질서 적응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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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여건 활용위한 우리의 과제
굳이 치열한 복구사업 수주전쟁이 아니더라도 석유의 위력을 지닌 걸프지역의 전쟁종식은 종전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걸프지역과 다양한 경제교류관계를 오래 유지시켜온 우리로서는 종전과 전후처리 과정의 경제적 측면을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전후복구의 특수를 보자. 주요선진국의 기업들은 전쟁이 한창일 때부터 불꽃튀는 수주경쟁에 나섰고 우리나라 역시 정부의 조사단파견,기업들의 진출채비로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으며 지나친 장사속을 나무라는 국제사회의 빈축이 들려오기도 했다. 불과 몇달전 무절제한 북방러시의 일대 유행이 빚어낼 경제적·외교적 폐해를 걱정했던 우리로서는 앞으로 그와 유사한 「걸프러시」가 펼쳐질 가능성에 대해 우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 우리기업들이 중동건설사업에서 종종 쓴맛을 경험했던 사실,미국등 선진기업의 하청형태가 되기 쉬운 복구사업 수주방식,이로 인한 수익성의 한계는 사전에 충분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 적어도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보화를 뒤지는 광경이 전재민의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수주전에 뛰어든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본다.
어쨌든 막대한 규모의 복구사업은 세계경기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며 종전으로 한층 견고해진 유가안정 전망 또한 세계경제와 우리경제의 호재로 작용할 것이 확실하다. 이와 함께 미국의 저금리정책,달러화의 약세까지 예상됨에 따라 때이른 신3저론마저 대두되면서 이를 우리경제의 낙관적 전망근거로 삼으려는 시각이 일부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중동 복구자금등 자금초과 수요의 확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국제금융시장의 수급사정변화가 금융경색과 국제금리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는 만큼 3저의 조건충족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쟁과 세계경제를 잇는 최대의 연결고리는 석유수급과 유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아직도 걸프사태중에 인상한 현행 유가체계를 그대로 끌고 나간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유가안정의 전망이 점차 확고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국내유가정책에도 탄력적인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두달새 3.5%나 오른 물가의 억제와 제조업 경쟁력강화를 올 경제정책의 핵심과제로 내세우는 정부가 국제유가의 변동을 호재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걸프사태의 발발이 나쁜 의미의 큰 충격을 우리 경제에 던져주었던 것처럼 종전이 세계경제를 호전시키는 효과 역시 작은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외 여건변화를 경제적 성과로 귀결짓는 우리 내부의 대응태세와 역량이다. 걸프종전이 몰고온 호재와 이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역관계를 냉철히 분석하고 우리의 능력에 맞게 이에 대응하는 일이야말로 걸프전후 국제경제의 변화에 대처하는 첫걸음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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