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비(정치와 돈: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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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협회 돈은 먹지 말아라”/명분 뚜렷해야 뒷끝도 개운
『정치는 김치처럼 약간은 시큼털털해야 제맛이 난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고 세상에는 남녀가 있듯 정치도 어두운 구석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약간의 어두운 구석」이 13대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으로 들어서면서 캄캄한 터널로 바뀌었고 「관행」이란 이름으로 묵인되다시피 하다가 뇌물외유와 수서사건으로 백일하에 드러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들은 검찰의 자발적 수사나 특정정치집단의 계획 또는 로비대상에서 제외된 의원의 폭로로 수면 위에 떠오른 정치권비리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뿐 국회나 정당 주변에서는 냄새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국회를 복잡다양한 부분이익이 충돌·조정·타협되는 종착역이라고 본다면 각종 기업이나 직능집단 등의 압력단체는 물론 행정부처까지 국회를 로비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수 있다.
특히 경제관계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세율조정문제 등을 심의할 때면 국회 재무위 주변에서는 끊임없는 소문이 나돌게 마련이며 여야 의원들은 로비 구설수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게 된다.
이번 임시국회에 소유주정 배급제도를 둘러싼 공방이 그 좋은 예.
지난달 31일 재무위에서는 평소 중소기업보호를 주장하던 평민당의 김봉욱·이경재의원 등이 『어려움이 있더라도 소신껏 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의 주정배급제 폐기방안을 지지했고,오히려 민자당의 김봉조·노흥준의원 등이 중소기업보호방안을 집중 추궁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 문제는 진로를 제외한 금복주·보해 등 지방 9개 소주업체가 모두 반발하고 있던 민감한 사안으로서 『평민당의 임춘원의원이 진로의 대주주인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게 국회주변의 해석이다.
이들 지방소주업체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로비를 펼쳐 1월중순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까지 방문,『특정업체의 이익만 옹호하고 나머지는 문을 닫으라는 말이냐』고 호소하기도 했다.
특별소비세의 인상 또는 인하문제가 걸려있을 때는 기업 또는 업종별 협회에서 집요하게 의원들을 공략한다.
11대 국회 피아노 특소세인하때는 모 피아노제작회사 회장인 의원이 재무위에 살다시피했으며 지난 88년 겨울 모피제품에 대한 특소세 인하때는 (주)진도 등 모피의류 생산업체와 밍크·여우 등 모피동물 사육업자가 벌인 한판승부는 로비전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수출시장에 한계를 느낀 진도등 모피의류 생산업체는 1백%의 특소세율을 낮춰 내수시장을 뚫어보기 위해 당시 사공일 재무장관의 경북고 선배인 서진경 진도부사장을 내세웠고 이에 맞서 모피 가축협회 4백여회원들은 전화부대까지 동원,지역구 의원들에게 압력을 넣은 결과 재무위에서 30%로 인하하기로한 특소세율을 60%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당시 모피가축협회의 저지 로비에는 모피 암시장업자들도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는 후문이다.
중동사태이후 에너지절약문제가 대두되면서 정부측이 내놓은 자동차 특소세인상 방안이 우여곡절끝에 중·소형 자동차에 대해서는 거의 인상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난것도 로비의 결과라고 국회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특소세가 오르면 자동차값이 비싸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자동차협회에서는 당연히 이를 저지하려 들수 밖에 없다.
여기에 『중산층의 세부담을 늘려서는 안된다』는 명분까지 작용,로비는 성공작으로 끝났다. 명분의 옷을 입을때 로비도 성공할 수 있으며 잡음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케이스로 꼽힌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협회돈은 먹지말라」는 말이 격언처럼 돼있다. 그만큼 협회돈은 아는 사람이 많고 따라서 소문도 무성하다는 얘기다.
80년대 들어 국회로비로는 처음으로 말썽이 났던 지난 81년 국회문공위 「돗자리 사건」도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통과를 둘러싼 대한교련의 돗자리 선물에서 비롯됐고 89년9월 구속됐던 박재규의원(당시 민주당)사건도 방제협회에서 농약관리법 개정과 관련,2억여원을 받은데서 문제가 됐다.
이번 상공위 뇌물외유사건도 자동차공업협회와 무역협회 등으로부터 외유자금 10만달러 상당을 2중으로 받았다 들통났고 지난해 3월 임시국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때도 재단이사장들의 대 국회 로비명단이 공개되는 등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사립학교법 통과를 둘러싸고 국회주변에서는 60억원의 로비자금 유포설이 파다했다.
협회의 돈을 의원들이 꺼리게 되면서 자연히 로비의 방법도 1대1의 은밀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로비시장도 암시장 형태로 형성되면서 건전한 로비도 주눅들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정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롯데 영등포역사 상가특혜분양사건은 검찰에서 발을 빼는 바람에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지만 「합법」을 내세운 업체로비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국회와 정부·재계·이익단체들의 합동작품으로 연출되는 로비와 역로비는 돈과 이권만이 아니라 정국상황과도 맞물려 얽히고 설켜 돌아가기 때문에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 국회의원들 스스로의 지적이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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