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재개 이끌어 낸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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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재개된다. 중단된 지 1년3개월 만이다. 회담 재개에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가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북한이 예상하지 못한 카드로 압박하는가 하면 자신을 스스로 '북한 차관보'라고 부르며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 "비핵화 의지 있다면 보여 달라"=힐 차관보는 9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북한에 18개월 안에 핵을 폐기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이 전하는 상황은 이렇다. 지난달 28~29일 힐은 중국 베이징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15시간 동안 머리를 맞댔다. 김계관 부상은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상투적인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힐은 "정말 그렇다면 18개월 안에 그걸 보여 달라"고 압박했다.

예상치 못한 시한 설정에 당황한 김계관은 "우리가 원하는 걸 미국이 해준다면 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힐은 "지금 미국은 정말 큰 것(북한의 핵 폐기)을 원한다. 북한이 이걸 들어주는 대신 바라는 것도 클 텐데 그게 뭐냐"고 물었다. 김계관은 즉답을 못하고 "그건 나중에 얘기해 주겠다(평양에 가서 상의한 뒤 답하겠다는 뜻)"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화 사실을 확인한 정부의 한 소식통은 "18개월 뒤라면 2008년 6월께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대선(11월)을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대북 정책을 행사할 시기"라며 "힐 차관보가 임기 중 북핵을 타결 짓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뜻을 강하게 전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 북핵이 최우선 과제=힐 차관보는 워싱턴의 의회.행정부 인사들에게 "나는 (동아태 차관보라기보다는) 북한 차관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 소식통들이 전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다음주 안에 임명할 대북 정책 조정관직 겸임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대북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자리인 만큼 다른 사람이 맡으면 업무의 추진력을 잃게 될 걸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민주당의 톰 랜토스 차기 하원 국제관계위원장도 9일 본지 등과의 회견에서 '대북 정책 조정관으로 누가 적임자냐'는 질문을 받자 "6자회담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힐 차관보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를 지목했다.

힐 차관보 휘하의 동아태국도 한국 근무 경험이 있거나 한국계 미국인이 두각을 나타내며 한반도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캐서린 스티븐스 부차관보를 비롯해 성 김 한국과장, 모린 코맥 한국과 부과장 등이 그런 예다. 직원 수가 20명에 달하는 한국과는 동아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워싱턴의 중국.일본 외교관들은 "힐 차관보 이전까지 동아태국은 '판다 허거(hugger.판다 애호가.중국통)'와 '벚꽃 클럽(일본통)'이 돌아가며 장악했는데 이제는 '코리아 군단'에 밀리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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