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대째 우려내는 "담백한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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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경숙씨(40·서울 서초구 방배동 104의 10·강남 기업사 한일상사장부인)의 부엌은 독특하다.
식당과 분리된 부엌 한가운데에 가로 5m, 세로 1m쯤 돼보이는 준비대가 버티고 서있기 때문이다.
여느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 부엌구조는 이 집 여주인의 요리솜씨가 프로급임을 한눈에 짐작케 해준다.
실제로 최씨의 요리솜씨는 그 주변의 사람들이 앞다퉈 배우기를 자청할 정도로 정평이 나있다.
「아마추어 선생님」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그의 손맛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는 친정어머니 조성희씨(60)로부터 이어져 내러온 것으로 이는 또 아직도 김장김치의 마지막 간을 감별하는 외할머니 최량임여사(83)와 맥을 잇고 있다.
3대에 걸쳐 대물림 되고있는 이집 요리솜씨는 순수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 맵다거나 짜다거나 하는 강한 맛이 아니어서, 흉내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최씨댁 음식을 맛본 이들은 『전통 음식이면서도 일본음식 같기도 하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요리를 잘하는 비결은 적당한 간맞추기와 정성이라는게 3대의 한결같은 의견.
한사람이 같은 재료를 사용해 한가지 음식을 만들어도 정성을 들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음식맛은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재료구입에서 조리, 상차림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정성이 소홀해서는 안되지만 특히 『이 요리를 내왔을 때 먹는 이가 얼마나 좋아할까』하고 남을 대접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만 손끝에서 저절로 정성이 솟아오른다는 것을 이집 모녀들은 굳게 믿고 있다.
순수한 맛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제철 식품만을 이용하는 것도 조리의 철칙 가운데 하나.
뿐만 아니라 고춧가루를 빻아도 응달에서 1주일정도 널어두면서 하루에 두어번씩 저어줌으로써 매운맛을 줄이는 등 잔손질도 그치지 않는다.
이댁에서 대물림되고 있는 대표적인 정월음식은 겨자잡채. 금제 조씨 문중으로 시집간 최할머니가 시어머니 정용일씨(작고)로부터 전수받은 이 음식은 딸 성희씨의 혼사를 앞두고 집에 찾아왔던 사위 최이남씨(67·전 강남기업사장)를 대접했던 것이어서 가족사가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콩나물을 머리와 꼬리부분을 잘라버리고 소금을 살짝 뿌린 다음 비린내만 가실 정도로 살짝 삶는다.
무는 콩나물의 길이 만큼 채쳐 놓는데, 무를 설 때도 절대로 썰어야 나중에 물러지지 않는다.
돼지고기는 살코기만을 골라 삶은 다음 가늘게 채친다.
실고추·잣도 준비해두고 석이버섯은 채쳐 둔다.
밤·대추·다시마는 일부는 채썰고 일부는 사방1cm정도 크기의 마름모골로 각각 썰어둔다.
이때 다시마는 썰 수 있을 정도로만 가볍게 물에 불리는 것이 좋다.
대추씨는 버리지 말고 설탕에 재워두었다가 우려낸 물을 약식을 만들 때 사용하면 고운 빛깔을 얻을 수 있다.
달걀은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각각 갈라 지단을 부친 다음 일부는 채치고 일부는 마름모꼴로 썰어둔다.
겨자는 설탕·식초·소금을 약간씩 넣어 풀어 준비한 재료들과 함께 버무리면서 섞는다.
최량임 여사는 시중에서 파는 겨자대신 갓씨를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이용했으나, 요즘은 갓씨를 구하기 힘들어 외손녀인 최씨는 기성제품인 겨자를 사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어른이 드시는 음식은 부엌에서 간보기 위해 집어먹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상대방을 존중했던 예전의 식사예절은 오늘에 와서도 되새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최경희씨는 음식속에 담긴 정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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