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은 부정입학 “브로커”(「예체능입시」를 벗긴다: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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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막판 현금박치기는 1억이 보통/가을 교수개인전은 사례비 “장터”
H대 미대 모과 학생들 사이에선 K양(20·2년)이 부정학생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당초 미대 지망생이 아니었던 K양은 재작년 일반대학에 떨어진뒤 요로(?)를 통해 실력있고 영향력 큰 이 학교 B강사를 알게됐고 입시를 몇달 앞두고 집중적으로 개인교습을 받아 몇년씩 공부해도 입학이 어렵다는 이 대학에 지난해 거뜬히(?) 합격했다.
입학후 K양은 기본실력이 턱없이 떨어져 수업을 따라가는데도 허덕이고 있으며 방학때 다른 학생들은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데도 혼자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공부에 별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교수들이 특별히 관심을 쏟아주는 것은 물론 성적도 이상하리만큼 잘 나온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음을 듣거나 동작을 보고 채점하는 음악·무용 등과는 달리 미술은 작품이라는 「증거물」이 남기 때문에 입시부정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매년 미대 과마다 부정입학을 의심받는 학생들이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10여명 이상씩 된다는 것이 미술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S대 미대의 김모 교수는 『최근 미대 지망생이 부쩍 늘어나면서 미대 주변의 부정과 비리도 덩달아 크게 늘고있다』며 『공동관리제란 제도적 방지책과 작품이라는 「증거물」이 있어 다소 거추장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마음만 먹으면 부정의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고전적인 수법은 그림 일부분에 구멍을 내거나 특별한 표시를 하는 등 사전에 약속된대로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밖에 도화지 배부나 좌석배정 등을 둘러싸고 「장난」이 벌어지기도 한다. 수험생들이 도화지의 도장 찍힌 면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을 이용해 「봐줘야 할」수험생에게는 부드러운 면에 도장이 찍힌 도화지를 주고 나머지 수험생에게는 거친 면에 도장이 찍힌 도화지를 나눠주거나,「봐줘야 할」수험생을 석고상에 가깝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좌석에 앉도록 배려한다든지 하는 수법으로 실력발휘 기회에 차등을 둔다는 얘기다.
그나마 공동관리제가 아니라 학교 자체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지방대의 경우 부정은 더욱 손쉽고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울에서 통학거리안에 있는 지방 캠퍼스의 경우 실력으로 들어온 학생들보다 부정입학생이 더 많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부정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이 입시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입시부정에는 간혹 교수들이 직접 거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제자인 전임강사 또는 시간강사 등 소위 「새끼선생」들이 중간에서 브로커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교수집에서 직접 레슨을 받을 경우 레슨비는 1회 1백만원 내외이고 별도의 「합격보장금」은 2천만∼3천만원 정도이며 레슨을 받지않고 막판에 「현금박치기」를 할 경우에는 보통 5천만원에서 1억원이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교수와 끈을 대기란 쉽지않기 때문에 대부분 학생들은 시내 학원에 강사로 나가거나 개인 작업실을 갖고 있는 이들 「새끼 선생」들을 통해 간접거래를 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새끼 선생」들은 커미션을 먹게 된다. 서울시내 미대 총정원이 2천6백여명인데도 시내에 1천개 이상 미술학원과 화실이 성업중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H대 S강사의 경우 아예 강남에 직접 학원을 차려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나있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합격시켜주겠다는 교수의 개인전등 전시회를 찾아가 평가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그림을 구입,교수에게 자연스럽게 고액의 사례비를 전달하고 교수의 명성도 높여주는 방법까지 동원된다.
일부 학부모들은 유명교수들의 개인전이 주로 10,11월에 열리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D여대 미대 박모양(21)은 88년 자신이 다니던 서울 H학원측으로부터 『서울에서 가까운 K대학에 3천만원을 내면 반드시 합격할 수 있다』는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H학원은 일단 들어가면 합격을 보장해준다는 명문학원으로 박양은 다른 학생들도 입시를 앞두고 비슷한 제의를 받은 것을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박양은 이 학원의 합격률이 높은 것이 이같은 브로커역할 때문이었다는데 어이가 없었고 미대를 지원한 스스로가 한심스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예·체능계 입시에 부정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입시제도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문제에 기인한다.
그러나 예술이나 체육을 개인의 적성이나 재능과 관계없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삼으려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책임은 더 크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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