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특수」 노려 대책 부산/경협타결후 빨라진 기업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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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TV 4백만대등 요구 물량 엄청나/종합상사들 작년 2.5배 수출계획/과당경쟁 막기위해 당국 업체별 배분방침
한소 경제협력회담이 타결되면서 국내기업들의 움직임이 한결 빨라지고 있다.
종합상사등 각 기업들은 이번 합의를 올해 대소 진출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전략아래 22일과 23일 북방관계자들을 긴급 소집,대책회의를 잇따라 열고 합의내용을 분석하는 한편 합의사항 집행과정에서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번 회담의 주요 합의내용은 ▲소련에 30억달러 상당의 경협자금을 대주고 ▲자원개발·과학기술·어업·교통 및 체신분야에서의 각종 공동협력사업을 벌이는 것 등 경제협력에 관한 가능한 분야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국가적으로 보면 이중 경협자금을 대주는 것은 소련측의 상환능력등과 관련된 위험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한국 기업들의 대소 수출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호기가 없는 셈으로 이번 경협대금 30억달러중 은행차관 10억달러는 제외하더라도 ▲원료 및 소비재 전대차관 15억달러 ▲플랜트 연불수출 5억달러 등의 경우 일단 수출만하면 국내은행에서 대금을 받게돼 전혀 밑질 것이 없는 장사인 셈이다.
따라서 기업들로서는 거래품목으로 정해진 53개 원료 및 소비재품목과 8개 프로젝트에 대해 과연 어떤 품목을 얼마만큼 팔고사느냐에 관심이 집중된 상태.
53개 품목 가운데는 냉장고·세탁기·라디오·TV·VTR·녹음기·전화기 등 가전제품과 치약·신발·자전거·캐비닛 등 생활품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소련측의 요구사항만으로 보면 TV의 경우 4백81만대,냉장고 3백20만대 등 품목별 요구량도 엄청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기업들간에는 이같은 품목들을 소련이 얼마나 구매요청을 해오느냐와 함께 한발이라도 먼저 수출티킷을 따기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억달러에 해당하는 수출물량을 업계의견을 바탕으로 업체별로 배분,과당경쟁을 막겠다는 방침으로 지난해의 수출실적·기업규모 또는 생산능력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중이다.
특히 이번 합의사항 가운데 생산기술(상공부주관),과학기술(과기처주관) 등 양쪽에서 동시 합의된 기술문제는 이번 회담의 최대성과로 꼽히고 있으며 미·일 등의 기술보호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돌파구로도 여겨지고 있다.
각 기업은 이와 관련,올해의 경영목표 수립과정에서 이미 대소 진출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아직 올해 계획을 매듭짓지 못한 현대종합상사를 제외한 6개 주요 종합상사들의 올해 대소 수출계획은 10억9천1백만달러로 지난해 실적 3억9천2백만달러의 2배반을 넘고 있다.
이는 이들 종합상사들의 올해 전체수출목표 증가율 13.3%는 물론 중국·동구권 등을 포함한 공산권 수출목표 증가율 88%에 비해서도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각 기업의 소련을 향한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목표가 달성된다면 사상 처음으로 대소 수출 10억달러선을 넘게되면서 대중국 수출규모를 처음으로 웃돌게될 전망이다.
그러나 목표달성 여부는 둘째치고 자칫 과열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커질 우려도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협자금 제공과 관련된 수출문제만 하더라도 기업들이 수출입은행에서 받는 대금은 소련측의 미약한 대외상환 능력등을 감안할 때 우선은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기업들이 만약 소련의 불안한 내정과 대금지불 능력 등을 고려해 그동안의 교류확대를 늦춰왔다면 경협자금으로 이뤄지는 수출에서도 같은 수준의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소련은 미국·유럽 등 기존시장의 확대가 한계에 이르고 있고 특히 걸프전쟁으로 중동진출에 큰 차질이 빚어진 상태에서 우리업계에 제2의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점이 무분별한 진출,과당경쟁을 합리화 시켜줄 수는 없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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