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감정만 앞세운 방송의 신문 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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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야망을 가진 한 젊은 기자의 충성과 배신을 다룬 영화 '깨진 유리'(Shattered Glass)가 미국 미디어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는 1998년 '뉴 리퍼블릭' 시사잡지사에서 기사를 조작해 쫓겨난 스테판 글래스의 스토리를 재구성한 것이다.

미국 최고의 신문인 뉴욕 타임스의 기자로 기사를 조작.표절해 큰 충격을 줬던 '제임스 블레어'의 악몽이 아직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가운데 이 영화가 최근 개봉된 것은 신문업계에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가상의 세계지만, 기자들을 사욕을 위해 기사를 조작하는 '일그러진 영웅'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용감한 기자상은 사라지고, 할리우드가 기자를 문화적 조소 거리로 만드는 것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 방송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방송사들은 '법과 질서''케이 가 등 드라마에서 기자를 범죄자, 혹은 범죄 연루인물로 폄하하기도 한다.

신문의 자유와 가치를 건국 이념의 최고 가치로 신봉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이같은 일이 일어날까. 무엇보다 방송.영화사들이 무책임하게 돈벌이만 추구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최근 글라스가 토크쇼에 초대돼 자서전을 홍보한 것이나, 블레어가 출판사와 자서전 집필 계약을 통해 돈방석에 앉은 게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미디어 풍경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방송.정부의 신문 비판 등 한국의 미디어 현실과 흡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현상적인 차이는 미국은 단발적으로 가상세계를 통해, 한국은 지속적으로 실제상황에서 신문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미국에서는 이들이 '상업주의'에 빠져 있으며 기자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국에서는 당파적으로 '정권'과 코드를 맞추고, 편가르기와 흑백 논리로 신문 전체를 흠집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신문계나 지성인들은 이런 현상이 장기화하면 신문 저널리즘이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것이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 한국 신문은 경영의 위기 뿐 아니라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내부 문제도 있지만, 정부.방송의 신문 때리기 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계 어디에도 공영방송이 상설 프로그램으로 신문 때리기를 하는 나라는 없다.

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진보하려면 우와 좌,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성의 매체(인쇄 매체)는 죽고 감성의 매체(전파 매체)만 왕성해진다면 이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과 미디어업계에 던지고 싶은 물음이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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