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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선

윤 정부 경제정책 ‘샤워실의 바보’ 안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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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

김동호 경제에디터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간 어떤 경제 성과를 거두었을까. 그간 윤 정부는 실패로 끝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습하며 재정 긴축과 수출진흥 정책을 펴왔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멈추고, 문 정부 때 400조원 넘게 불어났던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주춤해졌다. 그렇다고 경제가 크게 좋아진 것도 아니지만,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는 잦아들었다. 재정 긴축이 시작되면서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국제 연구기관들의 경고음도 뜸해졌다.

지난 2년 정책 성과 체감 힘들어
공시가·R&D 예산 정책은 패착
실용에 힘 쏟아야 남은 3년 성공

노동·교육·연금 개혁에도 시동을 걸었다. 다만 아직 성과를 체감하긴 어렵다. 노동개혁은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높인 것 외엔 근본적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여성과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 환경을 개선하거나 일자리를 새로 발굴하는 실용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에서는 킬러 문항 배제라는 미시적 조치를 빼면 사교육 의존 완화와 공교육 정상화 등에서 그 성과가 미미하다. 연금 개혁안은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미덥지 않다. 물론 쉽지 않은 개혁과제라는 건 잘 안다.

기본 방향 자체가 잘못된 정책도 있다.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그렇다. 문 정부의 공시가 현실화는 문제가 많았다. 우리 경제 규모와 저성장 현실을 고려할 때 공시가를 시가에 맞춰 과세하는 건 부작용이 컸다. 문 정부는 시가 50~60% 수준의 공시가를 90%까지 높이려 했다. 이는 곧 세금 증가로 이어졌고 바로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됐다. 이 충격으로 문 정부 재임 중 서울 아파트 가격은 두 배 폭등했다. 무주택자들 사이에 2021년 전후로 ‘벼락 거지’가 됐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고 서민은 상대적으로 더 궁핍해졌다.

급격한 과세는 중산층도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든다. 공시가는 재산세는 물론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기준이 된다. 집값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1주택자도 이 두 세금을 모두 내야 한다. 이중과세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일종의 부유세인 종부세는 과세 대상이 부유층에게만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납세 대상자들이 수용하고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공시가 인상은 세금 상승을 거쳐 집값을 자극하며 부동산 시장을 불안하게 했다. 상당수 무주택자는 서울 바깥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서민형 빌라 수요가 급증했다. 그 부메랑이 빌라 사기 사태와 빌라 기피 현상으로, 나아가 전세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문제점을 직시한 윤 정부가 공시가 현실화를 폐기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은 합리적이긴 하다. 하지만 합리성만으로 세상일이 되는 건 아니다. 공시가 현실화 폐지는 정무적·전략적으로는 패착이다. 조세의 재분재 기능을 고려하지 못한 실책 중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문 정부 때처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집을 가졌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식의 징벌적 과세는 국민을 힘들게 하고 경제를 왜곡한다. 지속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제도 자체는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집값이 급등하면 언제라도 현실화율을 상향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둬야 했다. 지금이라도 폐지를 번복하는 게 마땅하다.

R&D 예산 역시 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게 출발이었다. 문 정부 재임 중 폭증한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고 긴축하는 건 합리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경중을 가리지 못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한국이 먹고 사는 원동력은 노동력밖에 없다. 그 노동력을 높이려면 R&D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그걸 줄였으니 스스로 손발을 묶은 셈이다. 이런 자가당착이 없다. R&D 예산 감축은 총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듯싶다. 사후 해석에 불과하지만, 과학연구단지가 들어선 대전 지역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경제가 금세 회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김대중 정부의 정보기술(IT) 육성이었다. 이를 위해 당시 정부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나랏돈은 먼저 보면 임자라는 듯 정부 예산을 부정하게 빼 쓴 기업인도 많다. 그 정도의 거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였지만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말라고 했다. 경제 정책이 온탕·냉탕으로 오가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경고다. 좀 답답해도 천천히 방향을 틀어야 한다. 경제 정책의 장단점을 함께 봐야 한다. 윤 정부는 과거와 싸우지 말고 실용만 보고 가야 한다. 의회를 장악한 거대 여당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