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들리는 베트남 각국에 경협손짓/동구원조 끊기고 쌀수출 막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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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 투자하긴 다소 불안감
베트남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각료급)이자 당중앙위원인 판 반 카이일행 5명이 오는 1월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다. 베트남 각료로서는 88년 2월 방한한 부 투안 전 경공업장관에 이어 두번째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경제협력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
베트남은 이미 국영회사인 석유수출입공사(COALIMEX)와 베트남해운공사(VOSCO)의 직원들을 서울에 파견,상주시키기로 결정한 바 있다.
양국 경제협력관계가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느낌이다. 그러나 과연 이 시점에서 대 베트남투자가 안전한 것인지,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베트남경제를 향한 불안감은 그 바탕에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근거를 깔고 있다.
베트남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모방한 도이 모이(쇄신)정책을 최근 몇년간에 걸쳐 강력히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여전히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제공되던 원조가 대폭 줄어들어 심각한 물자난을 겪고 있는데다 페르시아만 사태로 인한 석유가폭등을 비롯해 쌀·비료·철강제품·휘발유 등의 가격이 세배 이상 폭등,베트남경제가 곤경에 빠져 있다.
베트남정부는 소련등으로부터의 원조가 완전히 끊어질 것에 대비,연초부터 무역허가증 발급을 중단하는등 외화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승용차등 고가품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이와 같은 조치에도 불구,인플레는 계속 악화되고 암시장이 활개치는 경제난맥상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중국·인도 등지에서의 쌀풍작으로 베트남의 주요 수출품목인 쌀의 국제시세가 큰폭으로 떨어져 위기에 처한 베트남경제를 벼랑끝까지 몰아넣었다.
빈사상태에 빠진 베트남경제의 유일한 희망은 베트남 남부해안 대륙붕에서 생산되는 원유.
소련과의 합작기업인 베트소브페트로사는 이 대륙붕유전에서 올해 약 2백60만t의 원유를 생산했으며 내년에는 3백50만t까지 생산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베트남당국은 이곳에서 생산된 원유를 정제할 베트남 최초의 석유정제공장건설을 외국자본 유치의 호기로 판단,대대적인 입찰광고를 벌였다.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서구등 선진국과 동남아의 신흥경제국들의 자본투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지난 17일 실시된 석유정제공장건설 국제입찰에는 15개 외국기업이 응찰,외국자본 유치에 밝은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베트남정부는 석유정제공장 설립을 신호탄으로 최근 인도네시아와의 합작은행 설립을 허가하고 태국과의 경제협력에도 적극 나서는 등 개방움직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와 함께 동남아시아 및 유럽 각국 항공사의 베트남취항을 허용,물자와 인적교류의 물꼬를 열어놓았다. 베트남이 최근 한국정부와의 경제협력에 예전과는 강도가 다른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이와 같은 경제난국 타개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투자·시설분야 등에 있어 외국과의 구체적인 경제협력 논의가 마무리되지 못한데다 베트남의 경제위기가 계속 심화되는 추세여서 자칫 겨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외국기업들의 진출의욕을 얼어붙게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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