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 대물림 코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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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나는 교복만으로 겨울을 나야 했다. 그것도 이종사촌 언니에게 물려받은 헌 옷이었다. 당시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다. 몇몇 친구들처럼 공장으로 가지 않은 것만도 사실 감지덕지였다.

집에서 학교까진 십오 리(6㎞) 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걸어다녔다. 털모자와 장갑, 목도리는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래도 "추우니까 입고 가라"는 낡아빠진 점퍼는 도저히 입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내복과 뻣뻣한 교복만이 겨울 차림의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 삼십 리 길, 얼굴과 손등은 늘 동상으로 발갛게 부어 있었다.

종례가 끝난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불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코트를 하나 내밀었다. "올해 졸업한 선배가 입던 거야."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는 "집에 코트 있는데요…"라고 얼버무렸다. 선생님은 종이 가방에 코트를 담아 내게 주셨다. 삼십 리 등교 길을 교복 차림으로 오갔으니 나는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수업 시간에도 난데없는 기침 때문에 분위기를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걸 눈여겨 보신 모양이었다.

교문을 나섰다. 학교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서야 나는 코트를 꺼내 입었다. 무척 따뜻했다. 어머니는 호들갑이 여간 아니셨다. 어디서 이런 예쁜 코트가 났느냐고 말이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길고 추운 겨울을 그 코트로 났다. 졸업과 함께 코트는 여동생 차지가 됐다. 여문 배추처럼 속이 찼던 동생도 그 코트를 무척 아꼈다. 여동생이 졸업한 뒤엔 막내 동생이 코트를 물려 입었다.

누구였을까. 20여 년 전 내게 코트를 물려준 그 선배는. 덕분에 나와 내 동생들이 몇 번의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는지 그 사람은 알까. 지금도 겨울 거리에서 코트를 볼 때면 중학교 1학년 때의 겨울이 떠오른다. 코트를 내밀던 담임 선생님과 이름 모를 선배의 따뜻한 마음, 그래서 그 해는 내게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박예선(주부.39.의정부시 민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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