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 초기부터 방역·감시에 구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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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에 이어 경기도 양평과 평택에서도 잇따라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27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낙하리 철새도래지에서 AI의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합동조사반이 철새들의 분비물을 수거하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전국에 초비상이 걸렸지만 현장의 방역이나 감시 체계는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고병원성 AI로 확인된 전북 익산의 양계농장 주인은 지자체 등 관련 기관에 신고 한마디 없이 폐사한 닭을 수백㎞를 싣고 갈 정도로 감시체계가 허술했다. 또 주무부서인 농림부는 발병 1주일이 지났는데도 발병 장소 반경 500m 이내 가축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초 발생 이후 신고가 늦어지는 것도 문제로 드러났다. 현재 AI가 발생한 전국 4개 지역은 모두 첫 집단폐사 후 4~6일이 지난 뒤에야 방역당국에 신고해 조기 방역에 차질을 빚었다.

◆ 감시시스템 미비=AI가 발생한 익산의 농장주 이모(56)씨는 22일 오전 폐사한 닭 다섯 마리를 비닐 포장한 뒤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경기도 안양에 있는 국립 수의검역과학원을 찾아갔다.

이씨 농장에서는 19일(19마리)→20일(200마리)→21일(400마리)→22일(5000마리) 잇따라 닭들이 죽어나갔지만 지자체에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북도나 익산시는 수의검역과학원으로부터 22일 오후 '의사 AI'라는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집단 폐사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씨는 "닭들이 마구 죽어나가 상황이 다급한 데다 지자체에 신고할 경우 오히려 시간만 허비할 것으로 생각해 곧바로 국립 수의과학검역원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또 오염지역의 살처분 대상 통계를 잘못 낼 정도로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농림부는 AI가 '고병원성'으로 판명되자 26일 오염지역(500m 이내) 내 닭 23만 마리를 살처분하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실제 이곳 4개 농가에는 18만6000여 마리의 닭이 있었다. 일부 농가에서 키우던 닭들이 2~3주 전에 반출된 것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방역활동에 허점=현장 초기 방역활동은 엉망이었다. 전북도는 '의사 AI 발생' 발표 다음날인 23일 오전 10시 발생 농가 500m 이내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차량 통행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생 농가 입구 200m 지점에 임시초소를 설치해 진입을 막았을 뿐 마을 입구는 모두 개방된 상태였다. 초소 주변에는 경찰과 공무원 등 20여 명이 있었지만 대부분 방제복은 물론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근무하고 있었다.

또 발생 농가로부터 200~300m쯤 떨어진 농가 마당에서는 수백여 마리의 닭이 돌아다니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게다가 주변 농가 주민들은 AI 발생 사실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홍보가 미흡했다. 주민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 왜 이렇게 외지인들이 몰려드느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앞으로는 죽은 닭이나 농장 근로자의 이동 없이 신속한 검역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28일 전국 지자체와 농협 등 관계자가 모여서 전국적인 방역대책 회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대석.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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