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흔들리는 아나운서 "전문성으로 특화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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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프리랜서를 선언한 강수정上·김병찬 전 KBS 아나운서.

아나운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방송 진행자'와 '연예인'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 것이다. 교양 프로그램이나 뉴스 진행 등을 맡았던 아나운서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 진출이 늘어나며 생긴 현상이다. 잇따른 프리랜서 선언도 이를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이 같은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해결책 마련을 위한 공론의 장이 열렸다. KBS노조 아나운서지부와 KBS 아나운서협회가 23일 개최한'공영방송 진행자의 위상 정립을 위한 포럼'이다.

◆아나운서? 연예인?=포럼에 참석한 양승동 KBS PD협회장은 "방송 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방송 진행자의 대표격인 아나운서의 역할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고 운을 뗐다.

변화된 방송 환경에서 아나운서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교양 프로그램에 오락성이 가미되면서 연예인이 진행에 나서는 추세. 심지어 시사.보도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기도 한다. 교수나 전문가 등도 방송 진행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게다가 아나운서가 연예.오락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김현주 광운대 교수는 "전날 밤 연예인과 농담하며 오락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전하는 아침 뉴스는 신뢰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공영방송의 원칙이나 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 인기나 스타성에 기반한 진행자가 양산되고 있다"며 "하루아침에 대중의 환호를 받는 인기상품으로 부상했다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프리랜서 활동에 제약 둬야"='인기 상품'으로 떠오른 아나운서의 프리랜서 선언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온다. 최근 프리랜서 선언을 한 강수정.김병찬 전 KBS 아나운서의 사례가 그렇다.

프리랜서로 나선 이들이 맡았던 기존 프로그램의 진행 여부를 놓고 아나운서협회와 제작진이 대립각을 세웠다.

아나운서협회는 "스스로 키운 아나운서를 고비용으로 다시 쓰는 행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PD들은 "시청률과 청취율 전쟁을 치르는 입장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쓸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 이들이 진행하던 기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강성곤 KBS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를 선언할 수 있게 된 것은 조직의 배려와 동료의 양보, 행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프리랜서로 활동할 경우 일정 기간 동안 KBS 프로그램을 맡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또한 '시청률 안전판'으로서 인기 아나운서에 매달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 관행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정한 진행자 선정 과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전문성을 갖춰라"=포럼 참석자들은 흔들리는 아나운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아나운서의 자기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교수는 "아나운서 스스로가 연예인화나 인기 아나운서를 양산하는 분위기에 동조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범 KBS 기자협회장은 "KBS 아나운서는 보증수표가 아니라 방송 진행자가 될 수 있는 기본을 갖췄다는 것일 뿐"이라며 "스스로 특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아나운서가 방송 진행자로서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의미를 의식하는 등의 지적 변신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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