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은 우리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격동의 시간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월 14일)이 촉발한 ‘고문 정국’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개헌 정국’이 맞물려 긴박하게 돌아갔다.
개헌 정국에선 대통령 직선제 관철이 초미의 관심이었다. 이런 와중에 ‘이민우 구상’이 돌출했다.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언론 자유 보장,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 등 민주화 조치가 선행되면 전두환 정권이 선호하는 내각책임제 개헌도 수용할 수 있다고 불쑥 던졌다. 이 총재의 ‘선(先) 민주화 협상, 후(後) 개헌 논의’는 사전 협의가 없는 느닷없는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