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4대 대선 패배 이후 정계에서 은퇴한 나, 김대중(DJ)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정치 일선에 비켜나 있었다. 외견상으로는 ‘야인’이었지만 민주당 내에 나를 따르는 ‘DJ사단’은 여전히 건재했고, 민주당이 야당으로 제 역할을 하길 성원했다. 그러나 이기택 민주당 총재는 나의 뜻을 선의로 받아주지 않았고, 내 사람을 내치려 했다. 야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노력하기보다 나와 주변을 견제하는 데 주력했다. 잠복해 있던 미묘한 갈등은 95년 6·27 전국 동시 지방선거 때 터지고 말았다.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1995년 1월 14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 복귀 소문이 돌던 DJ의 ‘실질적 정계 은퇴’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6·27 지방선거는 35년 만에 단체장을 직접 뽑는 역사적이면서 상징적 의미가 컸다. 나는 자타가 공인한 ‘미스터 지자제’로 불렸다. 지방자치제 실시를 위해 20여 년 넘게 노력했고, 90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통해 쟁취했다. 지방자치가 정착하도록 앞장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