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관용' 사라지는 자유도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요즘 프랑스는 '톨레랑스 제로'다.

'관용'이나 '아량'으로 번역할 수 있는 톨레랑스(tolerance)는 나와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거나 피해자가 없는 가벼운 잘못은 적당히 눈감아 준다는 뜻으로 사용돼 왔다.

프랑스 특유의 이 톨레랑스 철학은 좌파 정권 시절에는 조금 더 강조되다가 우파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경시되는 등 부침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파 정권은 경시를 넘어 톨레랑스를 아예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뭔가 잘못을 저지르면 무조건 잡아간다고 보면 된다. 지난 1일 밤 파리 지하철. 걸인 한명이 객차에 올라 구걸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옆칸 문이 열리더니 시커먼 제복을 입은 지하철 경비대 요원 세명이 달려와 그를 끌어내렸다. 플랫폼에서 소지품을 검사하더니 바로 연행해 갔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승객 이동이 많은 역 구내에는 범죄 수사대가 3인1조로 눈을 부라리며 순찰을 돌고 있고 지상에는 더 많은 경찰이 오간다. 차량과 자전거, 심지어 인라인 스케이트까지 동원해 순찰을 돈다. 신호 위반이 잦은 길목에는 예외없이 경찰이 지킨다. 이전에는 좀체 접하기 어렵던 음주운전 단속도 이젠 일상적이다. 길을 막고 단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과속 단속도 강화됐다. 지난달 31일 수도권 일원에 처음 설치된 단속 카메라는 하루 만에 수백건의 실적을 올렸다. 2005년까지 전국적으로 1천개의 카메라가 설치될 예정이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남의 잘못에 관대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보는 피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소매치기 등 범죄가 일상화하고 교통사고 사망률은 유럽 1위가 됐다. 포도주 업계를 고려해 가벼운 음주운전은 봐주자는 소리가 쏙 들어갈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톨레랑스 제로'가 효과는 있다. 지난해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취임해 이러한 정책을 펴면서 범죄율과 교통사고 사망률은 현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외형률은 거세지 않더라도 대신 자율적인 내재율이 존재하던 자유도시 파리의 이미지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이훈범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