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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망명 DJ, 카터 만나 “난 이제 죽었다 통곡했소” ⑭

  • 카드 발행 일시2023.07.06

1982년 12월 23일 나, 김대중(DJ)은 다시 조국을 떠났다. 72년 박정희 정권의 ‘10월유신’ 탓에 일본에서 망명한 지 꼭 10년 만에 미국으로 ‘강제 출국’을 당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80년 5·17 신군부 쿠데타 때 불법으로 연행된 나는 ‘내란음모 사건’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2년7개월째 감옥살이 중이었다.

82년 12월의 어느 날, 아내(이희호 여사)가 청주교도소로 면회를 왔다. 노신영 안기부장을 만났다고 했다. “노신영 부장이 ‘남편에게 2~3년 미국으로 가서 병 치료를 하도록 권해 보시라.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도록 하겠다’고 하더군요. 아들, 재야 인사들과 상의했는데 미국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네요. 한국에 있으면 (감방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외국에 나가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입니다. 그걸 할 수 있는 분이 당신뿐입니다.”

미국 잡지 ‘피플(People)’의 1983년 2월 14일자 88면에 실린 인터뷰 사진. 이희호 여사(왼쪽)의 설거지를 도와주는 모습이 연출됐다.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미국 잡지 ‘피플(People)’의 1983년 2월 14일자 88면에 실린 인터뷰 사진. 이희호 여사(왼쪽)의 설거지를 도와주는 모습이 연출됐다.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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