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2월 23일 나, 김대중(DJ)은 다시 조국을 떠났다. 72년 박정희 정권의 ‘10월유신’ 탓에 일본에서 망명한 지 꼭 10년 만에 미국으로 ‘강제 출국’을 당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80년 5·17 신군부 쿠데타 때 불법으로 연행된 나는 ‘내란음모 사건’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2년7개월째 감옥살이 중이었다.
82년 12월의 어느 날, 아내(이희호 여사)가 청주교도소로 면회를 왔다. 노신영 안기부장을 만났다고 했다. “노신영 부장이 ‘남편에게 2~3년 미국으로 가서 병 치료를 하도록 권해 보시라.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도록 하겠다’고 하더군요. 아들, 재야 인사들과 상의했는데 미국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네요. 한국에 있으면 (감방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외국에 나가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입니다. 그걸 할 수 있는 분이 당신뿐입니다.”

미국 잡지 ‘피플(People)’의 1983년 2월 14일자 88면에 실린 인터뷰 사진. 이희호 여사(왼쪽)의 설거지를 도와주는 모습이 연출됐다.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