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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지시? 이후락 단독 범행? DJ가 본 DJ 납치사건 전말 ⑧

  • 카드 발행 일시2023.05.25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내 옆에 나타나셨다.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예수님의 긴 옷소매를 붙들었다. ‘내가 아직도 우리 국민을 위해서 할 일이 많습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1973년 8월 9일 0시를 갓 넘은 시각. 나, 김대중(DJ)은 현해탄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국 중앙정보부(중정)의 공작선 ‘용금호’에 감금당한 상태였다. 몸은 관(棺) 속 바닥에 까는 칠성판 같은 판자에 송장처럼 묶였다. 입에는 재갈이 물렸고, 두 눈은 붕대로 가려졌다. 손과 발에는 30~40㎏은 됨 직한 돌처럼 무거운 물체가 매달렸다.

1975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이희호 여사(왼쪽)와 함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 73년 납치 사건 당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회고했다. 중앙포토

1975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이희호 여사(왼쪽)와 함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 73년 납치 사건 당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회고했다. 중앙포토

나를 납치한 괴한들은 “솜이불을 덮어야 물속에서 안 떠오른다” “후까”(일본어로 ‘상어’라는 뜻)란 말들을 쑥덕였다. ‘나를 바다에 던져 상어밥으로 주고 죽여버릴 모양이구나’라는 끔찍한 생각이 스쳤다. 수장(水葬)의 공포에 떨던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죽음의 벼랑에 섰다.

일본 호텔에서 백주 대낮에 피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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