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내 옆에 나타나셨다.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예수님의 긴 옷소매를 붙들었다. ‘내가 아직도 우리 국민을 위해서 할 일이 많습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1973년 8월 9일 0시를 갓 넘은 시각. 나, 김대중(DJ)은 현해탄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국 중앙정보부(중정)의 공작선 ‘용금호’에 감금당한 상태였다. 몸은 관(棺) 속 바닥에 까는 칠성판 같은 판자에 송장처럼 묶였다. 입에는 재갈이 물렸고, 두 눈은 붕대로 가려졌다. 손과 발에는 30~40㎏은 됨 직한 돌처럼 무거운 물체가 매달렸다.
나를 납치한 괴한들은 “솜이불을 덮어야 물속에서 안 떠오른다” “후까”(일본어로 ‘상어’라는 뜻)란 말들을 쑥덕였다. ‘나를 바다에 던져 상어밥으로 주고 죽여버릴 모양이구나’라는 끔찍한 생각이 스쳤다. 수장(水葬)의 공포에 떨던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죽음의 벼랑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