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 개막식행사 30년「같은 메뉴」식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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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청주=체전취재반】스포츠와 교육의 국민적 잔치인 전국체전의 개막행사가 개최지방의 특성이나 체육·예술적 가치를 찾아보기 힘든 구태의연한 연중행사로 일관돼 일대개혁을 촉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체전의 개회식행사는 지난61년 군사정권이 수립된 제3공화국 이후 비대해지기 시작, 체전행사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는데 4반세기가 넘도록 그 내용과 형식이 천편일률적으로 지속돼 온 것이다.
해마다 각 시·도를 순회, 개최지를 바꿔 온 체전은 그동안 군사정권 하에서 오로지 화려한 외형과 대형화만 추구, 최고 통수권 자를 위한 눈요기 거리로 전락하다시피 했으며 올해도 변화와 개선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개회식 직전의 지나친 군중통제, 제식훈련과 같은 딱딱한 입장식, 그리고 중·고·대학생들을 6개월 전부터 동원, 연습을 거듭해 온 매스게임 등 식전·식후공개행사는 30여 년간 되풀이되는 고정메뉴인 것이다.
특히 각 시·도로 번갈아 개최되면서도 주최측은 지방특색을 살리는 창의적인 프로그램의 개발이 전무하다시피 하며 과거 고위층의 평가를 받았던 프로그램의 모방에만 급급하는 실정이다.
수천 명의 학생이 동원되는 매스게임의 경우 펼쳐지는 시간은 불과 10∼20분 정도이나 보통 6개월 전부터 정규수업을 희생시키면서 준비와 연습에 몰두해야 할 뿐 아니라 의상비 등 막대한 경비를 들이면서도「스포츠도, 예술도 아닌 어설픈 그림 그리기」의 집단동작으로만 시종하기 일쑤다.
주최측은 한결같이『타 시·도에서 해 왔는데 우리만 안 할 수는 없다』고 겉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모두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중론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86,88 양대 행사를 치렀고 북경아시안게임이 끝난지도 며칠 안돼 그 열기의 정도에서 너무도 확연한 비교가 되어 체전매스게임이 유치하게까지 느껴지고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체육부와 대한체육회 체전관계자들의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 때문.
체육부·체육회는 전국체전을 의례적인 행사로만 여길 뿐 이 행사를 통해 한국체육의 미래를 향한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와 목표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같이 체전의 개회식을 군대식으로 치르는 나라는 소련·중공·북한 등 공산권국가에 국한되고 있다.
▲백만기(39) 남고 매스게임 연출자=한마디로 어른들의 눈요기를 위해 어린 학생들을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아 안쓰럽다.
올 여름엔 유난히 장마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연습하는데 더 애를 먹은 것 같다.
연습 중학생들이 기진 해 통나무처럼 잇따라 쓰러질 땐 정말 이런 겉치레행사를 해야 하나 하는 짙은 회의가 들었다.
▲이민휘(58)재미대한체육회장=미국에서도 대규모행사가 있으면 식전공개행사가 있게 마련인데 자발적인 참가를 최우선적으로 한다. 71년만에 커다란 행사를 준비한 충북의 마음가짐은 알만 하나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조웅보 광주직할시 총감독=원칙적으로 개최지 지역특성을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므로 개막축하행사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방대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예산(의상 비)등은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된다. 카드섹션도 훈련된 학생들이 아니라 관중들이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것, 즉 대회표시·환영글씨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

<체전취재반>
▲체육부=임병대 차장·김인곤·방원석·유상철·신동재·장 훈 기자
▲사진부=채흥모 차장·김형수·주기중 기자
▲사회부=김현수·강진권·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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