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하고 나서시오/권영빈(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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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년에 와서 재수생을 위한 특수학원이 늘어났다. 주로 서울 근교에 위치한 이 특수학원들은 마치 사관학교 교육처럼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엄격한 규율과 강훈을 통해서 학력을 증진시킨다. 아침 기상에서부터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까지 학생들의 모든 행동은 규칙에 의해 통제되고 학생들의 성적과 행동거지는 한달에 한번씩 부모들에게 전달된다.
재수생을 둔 부모 입장에선 대학에 낙방한 자녀의 절망감이 안쓰럽고 그 절망감이 거리에 널려진 유혹에 끌려 행여 잘못된 길로 빠지지나 않을까 밤낮으로 조바심치지 않을 수 없다.
숫제 보지 않는 게 마음 편하고 부모 이상으로 자녀를 돌보고 공부시켜 주는 학원이 있다면,설령 비싼 학비가 들더라도 보내는 게 부모와 자녀 양쪽을 위해 좋다는 판단이 서게 된다.
재수생 김군도 이런 이유로 해서 H아카데미에 들어왔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학원의 규칙에 성실히 따랐다. 그러나 엄격한 통제생활과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입시공부에 스무살의 젊은 혈기는 때로는 반발했고 때로는 절망했을 것이다.
잠자리에 든 시간,3명의 재수생이 의기투합해서 기숙사의 울타리를 넘었다. 옆마을의 술집에 스며들어 술을 퍼마셨다. 입시에 대한 공포와 절망감은 규칙을 어겼다는 기묘한 쾌감과 어울려 3명의 젊은이를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비롯 술에 취했더라도 몰래 잠자리로 다시 돌아갔다면 사건은 더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갑작스레 마신 술로 이성을 잃어버린 친구가 돌을 들어 학원 유리창을 깨고 난동을 부리면서 학원은 발칵 뒤집혔다. 무단이탈ㆍ음주ㆍ기물파괴라면 이 학원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대죄일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전체회의에서 김군을 포함한 3명의 학생은 가차없이 퇴교처분을 당했고 당일로 집으로 보내졌다.
사흘이 지난 날,김군의 어머니는 퇴교 당한 아들의 손을 잡고 학원에 나타났다. 직원들은 긴장했다. 떼를 쓰며 아들을 다시 학원으로 보내겠다고 하면 어쩌나 모두가 전전긍긍했다. 그런 일이 전에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김군의 어머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못난 아들이 학원규칙을 어기고 면학분위기를 해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는 학생들 앞에서 자식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게끔 한자리에 모이게 해달라고 부탁을 조심스레 했다. 뜻밖의 제의는 받아들여져 호기심에 찬 학생들이 큰 교실을 술렁이며 메웠다.
김군의 어머니는 빼곡히 들어찬 재수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희들은 내 아들과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재수생들이다. 내 아들이 일시적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규칙을 어기고 남의 공부까지 방해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내 아들의 잘못은 아들을 키운 이 어미의 잘못이다. 제발 너희들은 내 아들과 같은 길을 밟지 말고 더욱 정진해서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해달라는 요지의 말을 그녀는 차근차근 정말 자신의 아들을 앞에 놓고 얘기하듯 정성어린 호소를 했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는 감동의 눈망울로 바뀌었고 술렁이던 장내는 숙연한 자리로 돌아갔다. 김군의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학원을 떠난 다음,남아 있던 학생들은 누가 앞서서 주장하지 않았지만 김아무개를 다시 우리 학원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학생 전원이 서명한 청원서가 직원회의에 제출되었다.
김군은 그 다음날 학생과 직원들의 따뜻한 박수를 받으면서 다시 H아카데미로 되돌아왔다.
이 작은 에피소드를 이처럼 과장스럽게 소개하는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흔하게 일어나야할 작은 일이 왜 이처럼 우리에겐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는가. 그만큼 우리 생활 속에서의 규범과 도덕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깡그리 무너지고 상실되었음을 반증하고 있지 않은가.
또다른 이유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타인이 보여주는 규범과 도덕의 실천에 대해 모두가 감동하고 찬양할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겐 아직도 남아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천주교 평신도들이 벌이는 『내 탓이오』라는 운동이 교파를 초월해서 공감대를 얻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도덕재무장운동이 사회 각처에서 강렬히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너진 규범과 상실된 도덕성을 새롭게 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게된다. 「내 탓이오」를 향한 도덕적 갈증이 그만큼 강렬한 오늘이다.
새삼스레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기본은 개인주의이고 개인주의는 개개인의 도덕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화란 개개인의 도덕성과 신뢰성에서 출발하며 민주사회란 우리 모두가 쌓아놓은 도덕률과 사회적 기강 위에서 건실한 성장을 하게 마련이다.
제도와 시속을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도덕성을 재점검하고 자식들의 무분별한 행동을 나무라기에 앞서 나 자신의 부도덕을 준엄하게 나무라야 할 것이다. 가정과 공직사회가 그러해야 하고 국회와 정치인들이 그러해야 할 것이다.
자식의 잘못을 어머니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던 김군의 어머니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 익명의 신사임당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를 우리 모두가 마음 속으로 크게 외치면서 자식들 앞에서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숨은 신사임당이 되도록 함께 실천에 옮겨보자.
남의 탓 남의 험담에 동분서주하는 정치 사회 경제 지도층 인사들이 내탓이오 내탓이오를 마음 속으로 크게 외치면서 국민들 앞에서 한점 부끄러움 없는 지도자로 나설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실천으로 옮겨보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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