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제 질서 시험하는 복잡한 국익 다툼|중동 사태 발발 6주…재편되는 세계 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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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페르시아만 위기는 지금까지 거의 잊혀져가고 있던 국제평화기구로서의 유엔의 위상과 지위를 회복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유엔안보리는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침략 다음날인 3일 이라크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 (찬 14·기권 1)을 채택한데 이어 6일엔 경제 제재 결의 (13대 0·기권 2), 9, 16일엔 만장일치로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 무효 및 억류 외국인의 자유 이동을 결의했다.
안보리는 또 약간의 이견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경제 제재를 강제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회원국들에 부여하는 결의안을 반대없이 통과 (찬 13·기권 2)시켰다.
유엔 깃발을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유엔의 이름으로 무력 사용도 가능케한 이 다섯번째 결의안은 한국 전쟁에 유엔군 파견을 결정한 이래 유엔이 평화 파괴자에게 취한 응징으론 가장강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엔안보리의 이같은 결정은 최소한 2년전만 해도 예상 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게 유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이나 서방이 결의안을 제출하면 소련이나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와 강대국들간에 이견이 있는 국제분쟁은 유엔의 이름으로 해결을 모색하기가 극히 어려웠던 것이 지금까지의 상례였다.
유엔 창설 45년 역사에서 지구상에 크고 작은 분쟁이 많았고 미국이나 소련·중국 등이 개입된 분쟁이나,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갖고있는 5개 상임 이사국들의 이해가 다른 분쟁도 많았으나 유엔을 통한 해결은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과 아랍분쟁, 레바논내전, 소의 헝가리·체코·아프간침공, 미국의 그레나다·파나마침공, 티베트문제, 포클랜드전쟁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유엔의 무력화는 이의 창설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2차대전 승전국들, 특히 미소를 축으로 한 동서 냉전 때문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페만 사태는 강대국들의 유엔에 대한 시각을 바꾸게 했다.
서방 석유 공급원인 아랍에 대한 후세인의 지배 의도를 저지하려는 미국은 아랍 민족주의와 경제 이익 우선 국가들의 일탈을 우려, 유엔을 동원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소련은 경제 개혁을 위해 평화 기조의 세계 구도를 바랐고 더구나 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서방의 도움을 절대로 필요로 하고 있다.
이같은 미소의 일치된 이해 관계가 거의 빈사지경의 유엔 기능을 되살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뉴욕=박준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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