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경 자가용족(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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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수해피해 주민들은 비지땀을 쏟으며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멀거니서서 구경만하고 계시면 됩니까. 차량을 빼고 자리를 떠주십시오.』
『아 여보슈,구경도 못합니까 구경도… 이거 왜이러슈.』
휴일인 16일 오후 수해복구작업이 계속되고있는 일산ㆍ능곡으로 진입하는 왕복 2차선도로에서 수해의 참상을 뒷짐지고 관람(?)하는 얌체구경꾼들과 경찰사이에 승강이가 계속되고 있었다.
서울등지에서 몰려든 3백여명의 구경꾼들은 왕복2차선의 좁은 도로변에 자가용을 주차시켜놓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진흙탕속에서 삽질하는 주민들을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흙탕물에 잠겨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일으키고 오물로 범벅된 가재도구를 말리느라 땀흘리는 주민들,배앓이ㆍ설사ㆍ감기 등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치료하는 의료봉사원들,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워 묶기를 반복하는 자원봉사대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군상들이었다.
어린자녀까지 데리고 나온 한 구경꾼은 피해복구작업 현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카메라앞에 선 남매에게 웃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들이 도로변에 주차시켜 놓은 자가용 때문에 복구현장으로 진행하는 왕복 2차선도로는 하루종일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흙과 시멘트 등 응급복구자재를 실은 긴급 수송차량들이 2∼3㎞의 거리를 빠져나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무려 1시간.
현장정리를 하는 경찰과 군인이 차량을 빼줄 것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까지 했다.
이들은 홧김에 마신 낮술에 취한 마을청년들이 몰려들어 승용차의 바퀴를 차면서 『구경거리라도 난줄 아느냐』고 윽박지르자 그때서야 차를 몰아 꽁무니빼기 시작했다.
『수해피해 주민들은 가슴을 치고있는데 뻔뻔스러운 ×들 같으니라구….』
아스팔트길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자가용승용차의 뒷전에 대고 퍼붓는 한 주민의 욕설이 귓전을 울렸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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