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격해지는 시위대, 눈치 보는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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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려했던 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장에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시위대가 경찰 방패와 헬멧.곤봉을 뺏어 휘두르고 일부 경찰을 에워싸 발로 차고 두들겨 패기도 했다. 협상장에 진입한다며 컨테이너로 만든 바리케이드를 쓰러뜨리고 선상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마치 상륙작전하듯 바다를 헤엄쳐 협상장 진입을 시도했다. 올 7월 서울에서 열렸던 2차 협상의 폭력 사태가 되풀이됐다.

시위대는 워싱턴과 시애틀에서 FTA 반대 원정 시위를 벌일 때 일절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다. 미국 경찰이 무서웠던 게다. 한국 경찰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이렇게 나올까.

경찰은 이번에도 "사진 채증 후 처벌"이라고 경고만 했지 현장에서 불법행위를 한 사람을 한 명도 검거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과 시위대가 '폭력시위를 하지 않으면 과잉진압하지 않겠다'는 양해각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합법적인 시위를 보장하되 이를 벗어나면 법대로 하면 될 것을 시위대에 각서를 제의했다고 하니 경찰 스스로 공권력을 희화화(戱畵化)한 것과 다름없다.

시민들은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각종 집회 때문에 제대로 나들이 한번 못한다. 지난 주말에도 반미반전 민중대회, 비정규직 노동자 대회, 북핵 규탄대회 등 각종 시위 때문에 도심이 교통지옥으로 변했다.

경찰은 지난달 말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도심 집회를 금지하고 시위대가 당초 신고한 차로(車路)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8월에는 최루액 사용, 현장 검거 전담부대 운영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경찰은 정권 눈치를 보면서 말로만 원칙 대응을 외치지 말고 하나라도 실행에 옮겨라. 이런저런 지침도 필요 없다. 집시법만이라도 제대로 집행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