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고 시인 홀룹|저서 3권 영국서 동시 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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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민주화과정을 겪고 있는 체코의 가장 저명한 시인이자 과학자인 미로슬라프 홀룹의 시집·에세이집 등 저서 3권이 최근영국에서 한꺼번에 번역·출판돼 화제다.
67년 영국에서 그의 첫 번역시집이 발간된 지 23년만에 새로 출판된 시집은 초기작품을 추린『과거와 미래의 시』(PoemsBefore and After)』, 최근작을 모은『폐소멸 증후군』(Vanishing Lung Syndrome)이며 에세이집에는『현 시점의 차원』(The Dimension of the PresentMoment)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그는 최근 출판과 관련, 서방언론과 가진 회견에서 자신의 문학관, 민주화과정에 대한 인식, 압제하의 체코문학, 체코 장래 등에 대한 견해를 명쾌하게 피력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민주화를 지향하는 체코에 대해 그는 소련에 종속되지 않은 체코의 국민으로서 조국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말로 섣부른 평가를 유보했다.
지난 11월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극히 짧은 경험의 부분인데다 과연 압제가 끝났는지,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민주화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지난해 11월 이후의 상황은 발에 안 맞는 구두를 신고 다니다 벗어버린 것에 불과할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안 맞는 신발의 불평을 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체코국민과 국가의 장래는 좀더 두고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그의 작품에서는 서정성을 찾을 수가 없고 작품이 대부분 명사와 동사만으로 이루어지고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는 이 같은 경향에 대한 이유로 자신의 성장배경 및 직업, 체코의 현실을 든다.
38년의 뮌헨협약 이후, 특히 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체코와 체코국민은 유럽에서 버려졌다는 것이다. 즉 말할 자유가 없고 자신의 심경을 밝히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운 상황에서 서정성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분석이다.
왜냐하면 이 같은 상황에서 가능한 것은 단순한 묘사이지 개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언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정의하는 서정성이란 현상 등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 담긴 언급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제2차 세계대전기간 중 소년시절을 보내면서 수많은 시체를 보아 왔고 성장 후 시체를 주로 다루는 임상병리학자로서의 직업도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서정성 표현도구로 종종 비유되는 형용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한자리를 차지했다고 본다.
「위대한 붉은 군대」「영용한 군대」「영웅적 노동계층」 등의 용어와 실체와의 괴리에서 형용사가 왜곡됨을 생활을 통해 느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변혁 이전의 체코문학 시대를 형용사가 법을 잃던 시대로 규정하는 것이다.
홀룹씨는 체코의 변혁에도 불구, 자신의 작품세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의 심성에는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이 항상 존재하는 데다 정상적이고 개방된 사회에도 안팎의 불 합리는 항상 있기 때문이다. <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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