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기름오염 무방비 상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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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천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충돌사고와 이로 인해 흘러나온 벙커C유에 의한 서해안 일대의 오염 확산은 하찮은 부주의로 인한 엄청난 인재라는 데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기름을 가득 실은 유조선이 갖는 잠재적인 사고의 위험성과 그 결과가 초래할 엄청난 바다 오염의 재난은 과거 수차례 경험했던 유사한 사고로 충분한 경고를 받았다고 본다. 지난 88년 3월의 영일만 유조선 침몰사고와 87년 3월과 7월 두차례나 잇따른 경기도 옹진과 전남 신안의 유조선 좌초사고등 가까운 사례만 보아도 모두 항해부주의 때문이었음을 평소 해운과는 무관한 일반 국민들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물며 유조선을 직접 운항하는 전문가들이 경각심을 갖지 않고 같은 유형의 사고를 되풀이한다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인천 앞바다 유조선 충돌사고의 원인은 짙은 안개라는 자연조건에 돌리면 안된다. 아무리 친계가 불량했다해도,아니 그럴수록 계기의 점검으로 장애물의 출현을 면밀히 감시했어야 옳으며,예방조치로 다른 선박의 접근을 막았어야 했다. 더군다나 충돌한 두 선박이 같은 회사 소속의 유조선이므로 본사는 물론 소속 선박들도 상호간에 항로와 일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지 않았겠는가.
확실한 사고원인은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현재로서는 항해선박의 경계태만과 부주의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철저히 조사하여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 하고,차후 유사한 사고의 예방을 위한 경각심의 고취를 위해서도 과실이 발견되면 중벌로 다스려야 할 줄 믿는다.
지난 15일 사고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7천5백드럼이나 되는 벙커C유는 조류를 타고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사고지점인 월미도 앞바다는 물론 18일 현재 가까이는 영종도에서 멀리 영흥도ㆍ덕적도까지 확산됐으며 태안반도 일대까지 피해가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바다오염에 의한 해양생태계의 파괴는 물론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와 질적인 피해이겠으나 연안양식업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어민들의 각종 양식장이 시커먼 기름범벅으로 괴멸돼 가는 것이 가장 심각하고 가슴아픈 문제다. 행정당국은 조속히 피해상황을 조사하여 가해선박회사가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도록 서둘러 조처하길 바란다.
이런 해상오염사고가 날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효과적인 방재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우리의 방재체제와 장비ㆍ기술의 후진성이다. 사회 모든 분야가 첨단과학화 하면서도 유독 해양 방재만은 원시단계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은 해상교통이 증가하고 선박이 대형화되는 추세와는 역행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사고처리 기관이 정부 각 부처로 다원화돼 있는 현재의 행정체계로는 해양오염 사고를 즉시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기능을 갖추기가 어렵다. 선박사고의 가장 기초적인 예방책인 항해안전수칙의 이행에서부터 방재체제와 기술ㆍ장비의 효율화에 이르기까지 사고가 있을때만 떠들다가 말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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