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방송제작 거부인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MBC가 노조투표를 거쳐 13일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방송사도 이에 뒤따를 것으로 보여 또다시 전방송의 파행이 예상된다. MBC는 작년 9월에 이어 10개월 만에 맞는 제작거부이며 KBS도 이에 동조할 경우 불과 3개월의 간격을 두고 다시 반복하는 유감스런 사태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 방송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두 방송사의 파행방송이 국민생활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역설해 온 바 있다. 전파는 국가의 공공재산이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소유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세력이나 집단에 의해 전횡될 수 없으며 어떤 목적의 관철을 위해 악용돼서도 안된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제 또다시 정부가 추진하는 방송관계법을 저지한다는 구실로 방송인이 제작을 거부키로 하고 방송전파를 파행으로 내팽개치겠다고 나오는 것은 같은 이유로 국민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번 양 방송사의 파업사태때 보인 국민의 부정적인 반응을 제작거부를 결정한 방송인들은 벌씨 잊었는가. 전체 노조원의 절반이 훨씬 넘는 투표불참자와 제작거부 반대자에 의해서라도 MBC전파가 파행만은 면할 수 있도록,그래서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사지 않도록 애써 주길 바란다.
방송관계법 개정에 대해 반대하는 방송인들의 충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개정안 내용중에는 방송사의 편성과 경영의 자율성을 간섭하고 방송언론의 자유및 공정성이 자칫하면 침해받을 수 있는 이른바 「독소조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여론에서 「정부의 방송장악 기도」 주장의 중요한 근거로 지적한 KBS경영평가서의 공보처 제출이나 방송위원회의 프로그램 중지권및 방송국 재허가 제한요청권,특정방송 편성비율의 법정화 등은 삭제됨으로써 의혹의 요인은 감소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방송위원회의 구성과 교육방송의 문교부 직영,방송광고공사의 공익자금 운영에 대한 정부의 간섭같은 조항등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송관계법에 관한 반대라면 구체적인 조항이나 조문내용이 대상이 돼야지 법전체나 방송체제의 변화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민영방송의 허가에 대한 반대이론에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정경유착에 의한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설과 상업방송은 프로그램의 저질화를 초래한다는 우려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송이 현재와 같은 자율성과 공정성을 찾게된 시대적 변화와 방송인들의 각성및 시청자인 국민의 활발한 참여의식으로 보면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 같다.
프로그램의 질은 방송체제보다는 제작하는 방송인의 자질과 소양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지난 10년동안의 이른바 공영방송 체제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방송관계법 개정을 놓고 의혹을 사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서둘러 강행 통과시키려는 정부ㆍ여당의 조급한 태도에 있는 것 같다. 시급한 민생문제도 아니고,방송제도의 개편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이 소동을 거치며 반드시 통과돼야 할 이유를 우리는 납득하지 못한다. 좀더 시일을 두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최선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