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대책의 합리적 접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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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력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절대빈곤층이 아직도 전국민의 7.7%에 달하는 3백30만명에 이르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 경제의 발전과 형평의 문제,그리고 사회보장의 수요와 대책에 관한 문제를 다시한번 짚어보게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생활보호대상자 의료보조대상자로 구성된 이들 저소득 영세민의 숫자는 2년전의 4백만명에 비하면 꽤 줄어든 셈이지만 전체 인구중의 비중에 있어서는 1% 안팎인 일본,대만보다 엄청나게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저소득층 보호의 사회적 수요와 이를 충족시켜야 하는 사회적 부담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들 영세민들의 기본생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미 오래 전부터 생계지원,의료보호,자녀학비지원,직업훈련 등 이른바 공적 부조사업을 벌여왔으나 그 규모와 내용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실시할 것으로 알려진 영세민지원 확대계획은 지원의 수준을 높이고 지원방식의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빈곤대책의 진일보로 평가할 만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의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성은 날로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빈곤층속에는 개인적인 불운이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 외에 빠른 산업화과정이 초래한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구조적 필연성에 의해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이농민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만은 없는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인구의 고령화와 가족제도의 핵화 현상으로 한층 심각해진 노인문제라든가 전반적인 소득상승추세 속에서 더욱 깊어진 빈곤층의 심리적 박탈감을 생각할 때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의 건설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것은 또한 통일에 대비해야 할 사회의 선결과제이기도 하다.
절대빈곤층에 대한 최저생계비 지원을 골자로 하는 보사부의 계획에 원칙적인 찬성을 밝히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사안의 중대성과 더불어 복지정책의 파급효과가 갖는 불확실성과 복합성을 고려할 때,이 일을 추진하는 정책당국에 몇가지 당부를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일단 약속했다가 재원부족을 이유로 취소해 버리곤 했던 지역개발사업과는 달리,국민앞에 한번 제시된 복지사업,특히 저소득층 지원프로그램은 절대로 축소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냉정한 장기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충분한 검토가 사전에 이루어져야 하며 혹시라도 인기영합의 정치적 동기나 일시적 감상이 개재되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복지혜택의 확대과정에서는 기존수혜자의 탈락이나 혜택수준의 역진이 용납되지 않는 하방경직성이 작용하는 만큼 복지프로그램의 진전은 철저하게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크게 보아 사회보험ㆍ공적부조ㆍ사회복지서비스의 세 부문으로 된 사회보장체계의 뼈대와 내용을 짜맞추는 일에 있어서는 각 단계별로 세 부문의 적정한 배합,각 부문간의 연관성,부문별 선후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자력에 의한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와주고 절대빈곤층이 아니던 사람들이 이 안으로 새로이 내려앉는 수를 줄임으로써 절대빈곤층을 축소시키는 일이야말로 빈민지원사업에 못지않는 본질적인 국민복지증진의 길임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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