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이 보낸 상반된 메시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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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보름 사이를 두고 북한이 보내온 여러 갈래 상반되는 듯한 메시지를 보면서 우리는 착잡한 감회를 금할 길이 없다.
북측은 한소 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지난달 31일 자신들이 앞서 중단시켰던 일련의 남북대화 재개를 제의했다. 그러나 13일에는 한소 정상회담을 격렬히 비난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대화를 당분간 열 수 없다는 전화통신문을 보내왔다.
이에앞서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을 내는가 하면 최근에는 국제원자력안전조약에 가입할 뜻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같은 상반된 메시지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첫째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한소 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북방외교의 진척이 북한당국에 심대한 충격을 줬으며 두 갈래의 메시지는 그 충격의 반작용이라는 사실이다. 주변정세의 변화로 북한당국자들이 느낄 고립감과 좌절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그와같은 노력으로 두 메시지를 총체적으로 평가해 볼 때 북한당국은 한반도문제 해결을 주변 강대국을 통한 우회로를 통하지 말고 남북한끼리 직접 풀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이 주장해온 남북한과 미국간의 3자회담 제의를 후퇴시키고 그 이전에라도 남북한간에 군축토의를 할 용의를 보였으며 군축이나 주한미군 철수에 앞서 신뢰구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셋째,이와같은 긍정적 해석과는 반대로 북한이 한국내 재야세력을 부추기려는 의도에서 정부의 북방외교를 매도하고 마치 남북대화를 우리 정부가 기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 위한 선전전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와같은 해석중에서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앞으로 북한이 취할 행동을 통해 가늠하는 길밖에 없을 듯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마당으로 나오도록 유도해온 노력을 일관성있게 계속하기를 촉구하고 싶다. 그러한 의연한 대응이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피해의식을 누그러지도록 설득하고 대결 아닌 평화공존노선만이 남북한 모두에 이익이 되고 통일의 길을 열 수 있음을 인식케 해야 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북한측의 태도가 남북한 대화를 장기간 중단하고 긴장상태를 조성하겠다는 의사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본다.
북한측이 자기네 입장을 강화하고 명분을 내세우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었다.
그동안 한소 정상회담에서 비롯된 외교적 성과에 들떠 일반적으로 너무 낙관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측 실망이 더 컸을 뿐이다.
특히 이번 통지문에서 대화재개를 앞두고 『입장과 태도를 밝힘으로써 성의를 표시하라』고 한 북한측 요구는 우리의 북방외교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을 분명히 드러낸다.
북한측의 그러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은 노태우대통령이 우리의 북방외교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그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를 계속 조성하는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측이 궁지에 처해 있는 것이 명백한 이상 그들이 강한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우리측도 비슷한 강도의 단기처방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꾸준하고 차분하게 남북대화를 준비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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