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석재의천문학이야기

북두칠성과 우리 민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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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화에 따르면 우리는 북두칠성 신선의 점지를 받아 태어난다. 그런데 출생 과정만 북두칠성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재래식 장묘에서 관 바닥에 까는 것을 칠성판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삶은 북두칠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삼국시대 고분 벽화에도 북두칠성은 빠지지 않는다. 북두칠성으로 은하수를 떠 마시겠다는 정철의 가사는 멋까지 간직하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개천절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공휴일을 가지고 있는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개천절 행사에 참여하는 강화도의 칠선녀는 무엇을 상징할까. 이것 역시 북두칠성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만큼 우주와 하늘을 사랑하고 숭상해 온 민족은 거의 없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 또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천체를 상징하여 만들어진 국기는 꽤 많다. 예컨대 일본의 국기는 해를 상징하고 있고, 중국의 국기에도 별 다섯 개가 나온다. 반면 우리 태극기는 세계의 수많은 국기 중 유일하게 우주의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한마디로 자랑스러운 '우주 민족'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도대체 우주와 하늘을 숭상하던 전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심지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축복받지 못한 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많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 살든 국외에 살든 민족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둘로 갈라져 있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외국인들은 초현대식 빌딩을 짓고 나서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바람직하다 아니다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내온 제천 행사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늘에 빌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한 외국인의 질문에 무척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바로 한국인의 공통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3.1 정신, 새마을 정신, 국민교육헌장, 충무정신…, 어느 것 하나 나의 가슴을 진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국내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필자가 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 것이 한심했지만 문제는 그것이 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필자는 같은 질문을 주위의 한국 사람들에게 수없이 던져 보았지만 시원스럽게 들리는 대답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나오지 않았다. 필자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어 몇 년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자신 있게 대답한다-우리의 공통정신은 '우주민족사상'이다. 한마디로 우주의 섭리를 밝혀 이에 순응하려는 정신이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비라 부르며 추앙했다. 사극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 누군가. 천문을 보고 천기를 누설하는 도인 아닌가.

천벌을 두려워하며 의로운 삶을 추구하다 보니 가난한 선비 또한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타가 됐다. 우리 옛 그림에 나오는 낚시꾼은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세월을 낚는, 자연을 관조하는 선비다. 한국인들이 귀거래 후 누리고 싶은 삶이 그림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삶 아닌가.

사족 하나,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는 선비는 꼭 남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비란 예를 들어 음식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으려고 노력한 옛날 여인들도 포함된다. 옛 어머니들이 떠 놓은 정화수에는 북두칠성이 비치지 않았을까. 사족 둘, 필자는 기성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역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니 어떤 오해도 없기 바란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