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을 보는 평상심의 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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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날로 고조돼가던 위기감이 2일을 고비로 다소 진정되는 듯한 분위기다. KBS사태만은 MBCㆍCBS 일부 사원들의 동조 제작거부로 확대의 조짐을 보였으나 우려했던 산업현장의 대규모 파업이나 대학의 격렬한 시위는 없이 비교적 평온한 하루를 넘겼다.
물론 이는 2일이 휴일이었는 데다 비마저 내린 때문이지 위기의 근본요인이 제거된 까닭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가 필요이상으로 과열된 감정적 대립을 계속하고 그에 따른 불안감이 증폭되어온 상황에서 단 하루나마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는 것은 사회의 안정을 위해 대단히 값진 것이었다.
우선 모두가 그러한 여유와 심리적 안정감을 의도적으로라도 지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의 위기의식은 우리들 스스로가 실제이상으로 증폭하고 과장해온 느낌도 없지 않다.
기업들의 노사협약 개정이 대부분 4월말부터 5월에 집중되어 있어 이 무렵이 「뜨거운 시기」가 되리라는 것은 일찍부터 예상돼 왔던 일이다. 대학가의 시위가 4,5월에 격렬해지는 것도 해마다 있어온 일이다. 다만 올해는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KBS와 현대중공업사태로 문제가 좀더 일찍,그리고 좀더 폭넓고 뜨겁게 벌어졌을 뿐이다.
불안의 요소가 남아있는 것은 확실하나 찬찬히 살펴보면 주위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다행히 치솟던 부동산값은 주춤해졌고 증시도 회복세로 돌아섰다.
하반기의 경제전망도 상반기보다는 좋게 나타나고 있다. 과열분위기에서 한발짝 물러서 평상심으로 돌아보면 주위의 여건은 전반적으로 한결 안정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 앞으로도 대립상황이 지속되고 격화되더라도 일반 국민이 각자의 일터에서 평상심을 되찾아 직분에 충실하면 사회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일반의 그러한 자세는 힘과 힘으로만 맞서고 있는 대결 당사자들에게도 냉정을 회복하게 하는 무언의 압력과 완충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일 서울시지하철노조의 「무임승차투쟁」에 대한 시민들의 대응은 그런면의 값진 본보기였다. 노조의 그러한 투쟁이 합당한 것이었느냐는 문제를 떠나 시민들이 별다른 동요없이 묵묵히 차표를 사는 의연한 자세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그동한 숱한 정치적 변혁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겪어오면서 위기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가를 몸으로도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지하철노조의 「무임승차투쟁」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분별있는 행동은 바로 그러한 경험이 가져다 준 귀중한 슬기라고 믿는다.
빠른 시일안에 사회의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분쟁 당사자들과 당국도 일반 국민의 이러한 분별있는 자제와 행동,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무언의 요구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자신들의 요구도,힘의 과시도 할 만큼은 했다. 지금부터는 모든 문제를 한 걸음씩 물러나 양보와 타협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당국의 공권력행사도 자제될 필요가 있다. 공권력이 결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수단이 아님을 깨달을 때가 되었다.
모두가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평상심으로 난국극복에 합심할 것을 다시한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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