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자리 시가 1억원(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7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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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부대 기부금 명목 뒷거래/임용된 뒤도 편법계약등 통해 봉급깍기 일쑤
금년 신학기부터 서울 D대학에 전임강사로 출강한 김모씨(36)는 자신의 3월분 봉급명세서를 받아 보고는 크게 실망한 나머지 배신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계약과는 달리 김씨에게 지급된 봉급은 40만원이 채 안되는 시간강사 수당 뿐이었던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부닥친 김씨는 설마 사무착오려니 생각하고 담당부서 실무자에게 이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김씨가 「기대」했던 것과 같이 단순한 사무착오가 아니었다. 담당직원은 『교수님 월급은 1년후부터 정식으로 나갑니다』라고 답변하고 김씨의 질문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교수가 아닌 전임강사로 임용된데 대해 가뜩이나 자존심이 상해 있던 중에 담당자의 이같은 답변은 가위 충격적인 것이었다.
김씨가 미국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취득하고 지난 학기 이 대학 조교수직에 응모했을 때 재단측에서는 응모고시와는 달리 「1년후 조교수발령」이라는 유보조항을 일방적으로 제시했었다.
이처럼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막바지에 이를 수락한 것은 이 대학이 그나마 지방대학이 아닌 「서울대학」이기 때문이었다.
흔히 「대학교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전임강사부터 조교수ㆍ부교수ㆍ교수까지를 말한다. 이들은 일정한 대학에 적을 두고 상근하면서 정식교원으로서의 자격과 신분을 보장받게 된다.
따라서 시간강사와는 보수체계나 대내외적인 신분및 예우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시간강사는 말하자면 대학의 시간제 파출부인 셈이다.
조건부 임용에다가 계약위반까지 당하고 난 김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임명장을 받아도 첫달 월급을 받아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다』는 경험자들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모씨(37ㆍ철학)는 서울 H대학에 3년째 출강하고 있는 이른바 「보따리 장수」. 박사학위 없이는 「노점상」(시간강사 자리) 차리기도 쉽지 않은 형편에 「전속 탤런트」로 출연하고 있는 이씨를 동기생들은 행운아라고 부른다.
그런 이씨가 지난 학기 우연한 기회에 문교부의 교원관리 명부를 보고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타가 인정하는 시간강사 이씨가 문교부 보고자료에는 버젓이 전임강사로 분류돼 있는 것이 아닌가.
이씨는 처음 별로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흐뭇하게」 까지 생각했으나 그것은 결코 흐뭇해 할일이 되지 못했다.
이중계약이라는 편법을 통해 결국 학교측은 마치 이씨에게 전임강사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고하고 여기서 생기는 약 60%의 차액을 사실상 빼돌려 온 것이었다.
이 경우 『서류상으로는 언제나 하자가 없게 마련이며 설사 본인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재단측에서는 언제나 문교부에 「단순한 행정착오」라고 보고하면 그만』이라는 게 사립대학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지난 3월8일 강원도 S대 불문학과 김모교수등 24명은 임용당시 대학측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에게 작성케한 「봉급일부 포기각서」는 무효라며 정상적인 급여지급을 학교측에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김교수등은 학교측이 『봉급을 다 못주고 43만원(시간강사료)만 준다. 이것은 학교내에서는 양해사항이나 문교부에는 전액이 지급되는 것으로 보고된다』며 각서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학교측은 또 이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도 당초 채용광고와는 달리 「전임」이 아닌 「전임강사 대우」라는 꼬리표를 붙여 발령,당사자들이 항의하자 『각서를 쓰고 오지 않았느냐』며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서울과 지방대학에 5년째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김모씨(31ㆍ여ㆍ국문학)는 지난 학기 서울 S대 전임자리를 지원했다가 이 대학 재단측으로부터 1억원을 요구받고 그만 두손을 들고 말았다.
또 부산 모대학에 전임으로 재직중인 박모씨(38ㆍ수학)의 경우 가족이 있는 서울로 직장을 옮겨보려고 H대학쪽에 접근해 보았으나 그 역시 1억원을 제시받고 역시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 건실한 사학재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규로 전임강사를 임용할 경우 이른바 기부금 명목으로 5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공공연하게 뒷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약 75%를 떠맡고 있는 사립대학의 이같은 병폐는 만성을 넘어 어느덧 중증으로 접어든 지 오래다.
등록금의 약 80% 정도를 교직원 인건비로 지출하고 있는 재정이 빈약한 대학 경영주들은 8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한 고학력 실업자군을 대상으로 교수채용에 까지 편법을 동원,적자 메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임강사. 하늘의 별따리처럼 어려운 자리가 된 만큼이나 학문에 앞서 돈주고 자리를 사고파는 현실앞에 서있다.
사립대학 운영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 H대 박모씨(37ㆍ교육행정)는 『학생들이 이같은 대학내부의 비리에 눈뜬다면 데모양상도 과거 체제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경향에서 대학본연의 문제로 선회할 것』이며 『그럴때 학생들의 시위 등을 잠재울 만큼 자신있는 대학이 얼마나 될 지 문제』라고 지적했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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