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에 쫓겨 불아… 초초… ”/정호용씨 부인 자살기도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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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람들 발길 끊기자 심한 배신감/남편 독려하며 사조직 진두지휘/“아빠 사지로 몰아넣는 것 같다” 넋두리도
정호용씨의 부인 김숙환씨(47) 자살기도사건은 김씨가 최근 신경안정제를 복용해도 밤잠을 못이룰만큼 심한 노이로제증세를 보여온데다 후보등록마감일까지 가해진 노골적인 외부압력 때문에 저질러진 것으로 주변에선 풀이하고 있다.
김씨는 2일 정씨가 민자당을 탈당,대구 서갑구 보궐선거에 무소속 출마를 밝힐 때까지만해도 지난해 11월15일의 「정씨 공직사퇴반대 대구시민궐기대회」를 상기시키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뿐만아니라 김씨는 노태우대통령과의 의리문제 등으로 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던 남편 정씨를 독려하는 등 여장부다운 기질을 보였다.
그러나 정씨의 무소속출마 선언이후 여권인사들의 끊임없는 사퇴종용에 시달려온데다 기관원들의 계속되는 미행에 신변보호를 요청할 만큼 당초의 자신감이 흔들리기 시작,최근엔 심한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그동안 육사동기생인 이상훈국방ㆍ김제 전농림수산ㆍ안응모 내무장관 등이 대구에 내려와 사퇴를 종용한 외에도 여권주변에서 유ㆍ무형의 압력을 가했었다.
특히 8일 민자당공천자인 문희갑씨가 대구에 내려와 바람을 일으키면서 정씨의 핵심조직이던 서갑구 10개동 협의회장들이 돌아서는 등 조직이탈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그동안 음양으로 정씨의 신세를 지고 성원해 주던 지역경제인들마저 문씨후원회를 결성해 등을 돌린데다 동문ㆍ친구 등 주변사람들이 발길을 끊자 『우리는 이제 사람이 없다』며 배신감과 정치권력의 무상함을 한탄했다고 한다.
김씨는 9일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막내딸의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딸애도 만나고 권익현씨(전민정당대표)도 한번 다녀가길 원하는데 머리도 식힐겸 서울에나 다녀오자』고 정씨를 설득,서울로 갔으나 이때도 기관원들의 미행이 계속되는 바람에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만에 다시 대구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서울에서 승용차 3대의 미행이 계속되자 정씨와 함께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주위에선 말하고 있다.
이무렵 승용차의 카폰도 끊기자 김씨는 가까운 친지들의 전화마저 『도청당하고 있으니 마음으로 통화하자』며 몹시 불안해 했었다. 김씨는 남편 정씨가 서대구농협(대구시 평리동) 3층에 선거사무소를 연후엔 이곳 2층을 빌려 사조직인 「상지회부녀회」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김씨는 자살을 기도하기 2∼3일전까지만해도 『정호용이 불쌍하다』는 여성들의 동정론이 비등해지자 『내가 뽑은 정호용 내손으로 살려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직접만드는 등 열성을 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민자당측이 「당원배가운동」 등 공조직을 확대하고 17일의 대구 서갑구결성대회에 당소속 국회의원 1백60여명을 대구로 보내 서갑구뿐 아니라 대구전역을 휩쓴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직결속이 어려워지자 정씨와 함께 몹시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민자당을 탈당할 당시 무소속출마를 밝히면서도 「노대통령에 대한 도전」이라는 여론을 피하기 위해 『무소속 출마는 선거구민과 나의 문제일 따름』이라며 『오히려 공천권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노대통령에 대한 정면대결이란 추측을 없애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문씨가 본격적으로 표밭을 다지며 조직점검에 나서고 『정씨는 결국 사퇴할 것』이라는 뜬소문까지 난무하자 몇차례 보도진에 『후보등록의 결심엔 변함이 없다』고 분명한 태도를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그동안 정씨의 사퇴를 강력히 종용해 온 여권측이 『부인이 남편의 발목을 묶고 있다』며 김씨에게 화살을 돌리고 괴전화까지 걸어 『눈에는 눈,이에는 이』라는 극한 용어로 위협하자 심한 갈등과 불안감에 밤잠을 못이루는 등 괴로워했다고 주위사람들은 밝히고 있다.
자해한 김씨를 처음 발견한 박화순씨(44)에 따르면 김씨는 자살을 기도한 16일에도 오전10시쯤 정씨가 선거사무소로 나가자 신경안정제를 먹고 취한 상태에서 욕실에 들어가면서 『오늘 등록마감일인데 꽃님아빠를 사지로 몰아 넣는게 아니냐. 나 하나 죽으면 그만 인데… 』라고 넋두리했다고 했다.<대구=이용우ㆍ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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