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된 폐수서 죽은 물고기/공해 허용기준 전면 조정돼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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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일상생활이나 학문에서 어떤 상태 또는 개념의 가장 정확한 과학적 표현수단으로 수자를 이용하고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수자는 그 일목요연함이 최대의 장점이긴 하나 숫자 자체에 잘못이 있을 경우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에 대한 진실성은 다른 수단보다 치명적인 훼손을 입게 된다.
공해의 일부 기준수치가 엉터리임이 밝혀진 것도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모든 공해물질의 기준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한국화학연구소의 한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전국 29개 산업체의 폐수가 현행 공해물질 배출 기준수치에 적합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실험을 해보았더니 일정시간이 경과하자 이들 물고기등 생명체들이 대부분 죽어버리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공해의 배출허용 기준치를 정해 강력히 규제하려는 것은 인간을 비롯한 생물체가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생태계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함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용된 범위안의 공해물질이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 기준치는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명확히 입증하는 것이다.
기준치의 잘못 이외에 공해물질의 극히 한정적인 규제에도 문제는 있다. 미국등 서방 선진공업국들은 1백30종에 가까운 유독물질을 공해물질로 지정해 이들 물질이 폐수속에 함유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으나 우리는 겨우 17종만을 특정유해물질로 규제하고 있을 뿐이다.
규제대상에서 제외된 물질 가운데는 발암물질인 방사능과 DDT 따위 유기인물질도 포함돼 있다. 이들 규제대상 이외의 물질들도 생명을 위협하고 있음이 실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이런 수많은 유해물질들의 혼합된 작용에 의해 전체적인 독성이 상승함으로써 예상보다 더 큰 피해가 초래된다.
지금의 환경기준치는 개별유독물질 하나 하나가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의 무해한계를 의미할 뿐 여러가지 유독물질의 동시적인 환경오염을 고려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 분석대로 물속에 존재하는 2천가지 이상의 화학오염물질의 유독성의 상호작용을 감안한다면 환경보호기준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오염물질의 개별적 농도 뿐만 아니라 전체 오염물질의 총량규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오염물질 배출량이 총체로서 증가하면 개별적인 농도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자정력을 초과해서 지역 전체로 오염은 확산된다. 발생원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의 총량을 조사해서 거기서부터 역산해 개별 오염물질의 허용농도를 정함으로써 환경기준에 도달하는 총량규제방법이 채택되어야 한다. 공해물질 배출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 오래전에 정해진 농도규제 수치에만 매달린다면 현실적인 공해방지 효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정한 이치가 아닌가.
공해물질에 대한 환경기준이 오늘날 우리의 공해현실에 적합한가를 전면 재검토해 산업발전과 상응하는 억제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총량규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환경기준을 맞추기에도 어려움이 많은 실정에서 이러한 기준의 강화나 방법의 전환이 가능하겠느냐는 이의가 있겠지만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생명보전과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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