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의 북한 출신 화교들 "돈 있으면 북한도 살만한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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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丹東)은 중국에서 가장 큰 변경 도시다. 인구도 100만을 향하고 있다니 꽤 크다. 그리고 북한과 무역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건의 70%이상이 단둥을 지난다.

낮에 시내 중심가는 조금 과장하면 서울의 광화문 만큼 북적댄다. 절강성 등 남부의 자본이 몰려 다퉈 건물을 올리면서 스카이라인도 바뀌고 있다. 개발구라는 지역이 있을 만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밤이면 화려하게 치장한다. 압록강변엔 휘황 찬란한 네온사인이 피어난다. 그 네온 사인에는 9개가 되는 북한의 식당과 더 많은 수의 한국 식당, 그리고 중국 식당, 노래방, 호텔들이 포함돼 있다. 6.25때 토막난 철교와 새로 세운 철교에도 색색 전등을 달아 분위기는 더 살아난다.

시선을 북한으로 돌리면 풍경은 확 바뀐다.낮에는 초록의 숲이 눈을 채우고, 밤이면 무겁게 내리 누르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빛 몇개만 흔들거린다.그게 신의주 외곽의 모습이다. 압록강을 경계로 세상이 어쩌면 저렇게 다를 수 있나 싶다.

그래서 단둥은 북한 입장에선 꿈의 도시다. 꿈을 이루려고 북한 무역 일꾼들이 몰리고, 친척 방문을 나오고, 중국 봉제 공장에 취업을 하러 우리네 70년대처럼 젊은 처녀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행렬 가운데는 북한 국적의 화교도 있다. A씨(여)는 30대 초반의 황해도 화교다. 가족은 황해도의 바닷가 도시에 산다. 그녀는 단둥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며 한달에 약 150달러를 받는다. 한국돈 14만원 정도를 위해 자그만 몸으로 밤낮 없이 허드렛 일을 한다.

그녀는 원한다면 또 노력한다면 중국서 살 수 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알고, 남한 노래도 많이 알고, 단둥 좋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빨리 돌아가서 아직 꼬마인 아들하고 사는 것이다. 북한에 돈이 많은 것도, 부자도 아니란다. 역시 화교인 남편은 별 재주가 없어 시쳇말로 '그냥 논다'고 한다. 겉으로 말하는 단둥이 싫은 이유는 '집을 살 엄두가 안나' 그렇단다. 하기야 중국돈 1200위안 정도의 월급으로 집을 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어 보인다.

그녀는 북한을 편안히 여기는 것 같다. 자원해서 인민군 복무까지 하고, 백두산에서 평양까지 천리 행군도 한 그녀는 화교라는 민족의 구분을 빼면 완전히 북한 사람이다.

그녀는 북한에서의 생활 얘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꽃게라면 사족을 못쓴다. 그래서 철 때는 거의 매일 먹는다". 등딱지가 냄비뚜껑 만한 것이 현지가격으로 1000원 미만이란다. 북한에서 암달러 시세가 요즘 100달러에 23만 ̄25만원이니까 북한돈 1000원이라면 50센트도 안되고 우리 돈으로 450원 정도인 셈이다. 서울에선 그런 크기라면 2만 ̄3만원쯤 할 것이다.

돼지고기도 자주 먹는다. 1㎏을 사면 4인 가족이 실컷 먹는단다. 그래봐야 값은 2000 ̄3000원. 광어도 좀 큰 것이 마리당 2000원쯤해서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단다.

이쯤되면 그녀가 돌아가 살려는 이유가 짐작된다. 북한의 평균 임금이 2000 ̄3000원,암달러 시세로 1달러 ̄1.5달러니 월수 150달러인 A씨는 고소득자인 것이다. 화교라는 점을 활용해 일년에 몇달 밖에 나와 일하면 충분히 넉넉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그녀도 "화교가 좀 사는 편"이라고 한다.

단둥에 나와 있는 '좀 잘사는 편'인 화교 가운데는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꽤 있다. 사업을 하는 여성 B씨(30대초반)도 돈을 벌어 평안남도에 있는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험구는 신경안써도 "내 앞에서 김일성 대 원수님은 나쁘게 말하지 말라"고 못을 박는다. 사회주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자란 시기가 바로 고 김일성 주석의 통치기간이었기 때문인듯하다. 북한에서 나온지 약 5년쯤 되는 나이 50 넘은 한 화교도 "돈 있으면 중국이 됴티만('좋지만'의 북한 사투리) 돈 없으면 북조선이 됴티"라고 한다. 자본주의 생활에 고단해 하는 듯했고 돌아가 살 수도 있다는 태도였다.

그런 북한 출신 화교의 반응은 우리가 익숙한 '남한식 북한관'과 상당히 달라서 조금은 당황스럽다. 북한 주민의 사는 수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북한을 벗어난 사람들을 통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탈북자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에 의해 '북한은 못살 곳'으로 굳어졌다. 그러니 화교들의 친북적 태도를 '돈좀 있으니까 가난한 북한에 가서 폼잡고 살려는 것'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돈때문만은 아니어 보인다.그들에게 북한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우리가 돈 벌어 고향서 살고 싶어하듯 그들도 자연스럽게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북한에서 도로 가서 사느냐'고 입을 딱 벌리지만 그들에겐 고향인 북한에 돌아가는 것을 '죽으러 가는 듯' 생각하는 남한 사람들이 답답하다.그저 고향에 갈 뿐인데… A씨는 "총화를 좀 하고 당의 말을 듣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해주면 되지 뭐가 어떠냐"고 한다. '돈 쓰며 잘 살면 되지'라는 태도는 우리 사회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바로 이 '돈 있으면 북한도 살만한 곳'이란 뜻은 남한의 대북 전략에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실력에 버겁게 북한을 흡수 통일해서 휘청거릴 필요도 없고, 군사적으로 북한을 이기려고 애를 쓸 것도 없다는 시사다. 북한 주민들이 잘 살게 도와주고, 그래서 자기가 있는 곳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당장의 평화뿐 아니라 먼 장래의 통일을 위해 그보다 좋은 길은 없다. 화교 A씨를 비롯해 같은 마을의 북한 주민들이 부담없이 광어를 사먹을 수 있게 길을 찾고 협력해 주는 것, 그곳에 한반도의 길이 있다.

단둥=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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