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위상은 …'제4부'로 자리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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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세간의 이목이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 집중됐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을 통해 그해 봄 63일 동안 직무정지됐던 노무현 대통령을 업무에 복귀시켰고, 가을에는 정부가 명운을 걸고 추진하던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몇 달 사이에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고의 기관"이라는 극찬과 "보수세력의 마지막 보루"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여권에서는 헌재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두 사건을 계기로 헌재는 행정부(정부)-입법부(국회)-사법부(법원)에 이은 '제4부'로 부상했다. 국민에게 정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 있는 기관'으로 각인된 것이다.

헌재는 제2공화국 헌법(1960년)에 도입 근거가 마련됐지만 곧바로 5.16쿠데타가 터지면서 설립 자체가 무산됐다. 87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이듬해 설립된 헌재는 스스로 입지를 제약한 적도 있다. 92년 노태우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연기한 것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사할 때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며 심리를 무기한 연기했다. 변정수 당시 재판관은 이에 항의해 자진사퇴하기도 했다.

대법원과 경쟁도 벌여 왔다. 96년 헌재는 '실질거래가격 양도소득세'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은 단순 위헌과 달라 그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헌재와 다른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97년 헌재가 다시 "헌재 결정과 다른 대법원 판결은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하급 법원은 헌재보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따랐다.

이 같은 경쟁은 노무현 정부 들어 각종 결정을 통해 헌재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자연스레 정리됐다. 2004년에 헌재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합헌을 결정했고, 대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윤영철(69) 현 헌재소장은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 "헌재는 개인 간의 다툼에 대한 평가를 주로 하는 대법원과 달리 헌법에 근거한 정치적 해석을 내리는 곳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헌재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대마초가 마약이냐 아니냐를 판단해 달라는 위헌제청 등 갖가지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본지가 동아시아연구원과 공동으로 우리 사회의 24개 파워조직에 대해 실시한 평가조사 결과 국가기관 가운데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병주.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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