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외화내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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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전국 선수권 대회 폐막으로 올 시즌을 마감한 한국축구는 월드컵 본선 연속 출전의 외화와 달리 내실이 빈약한 사상누각이며 와해의 위기에 서 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으나 축구협회는 체질 강화를 위한 아무런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가장 심각한「문제단체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외적으로는 지난86년 멕시코 대회에 이어 월드컵 본선 티킷을 획득하는 등 화려한 한해를 맞았으나 내적으로는 눈에 띄게 두드러진 관중 격감 추세 속에 전반적인 경기력 저하, 난무하는 그라운드 폭력 등으로 크게 얼룩졌다.
더욱이 지난 연초 축구인들의 읍소로 사의를 번복, 축구협회장에 재취임한 김우중 회장의 축구협회는 독선적이고 편의적인 운영으로 일관, 행정력의 빈곤을 드러냈다.
협회는 유독 대표팀 운영에만 골몰한 나머지 국내 축구활성화를 위한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방치함으로써 협회 스스로가 한국 축구회보를 자초한 꼴이 됐다. 월드컵 예선 통과 역시 최근 아시아권, 특히 중동국가들의 상대적인 수준 저하에 편승한 호운이었다는게 지배적인 진단이다.
그러나 한국축구는 이번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진출로 아시아권에서 선두그룹에 올라선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경기력 향상은 꾸준하게 계속된 프로축구에 힘입은 것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대표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국내대표팀은 좀처럼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출범 7년째를 맞은 프로축구는 올해 축구협회로 통합되면서 경기 수를 대폭 늘리는 등 초반 활성화를 위해 몸부림쳤으나 승부에만 집착한 재미없는 플레이와 구태의연한 경기운영 등으로 경기 당 4천 여명에 불과한 관중동원에 그쳐 지난해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신생 일화의 참여로 초반 활기를 찾았던 프로축구가 막판 인기를 잃었던 것은 월드컵 축구 등으로 대표선수가 차출된데 원인이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중반 이후 협회 스스로가 관중동원을 위한 노력을 포기한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초반 프로축구가 경기당 1만명 가까운 관중을 동원했던 점을 감안하면 프로축구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실히 입증된 셈이다.
이처럼 관중 없는 썰렁한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 지적될 수 있겠으나 축구협회의 무능과 안일 외에도 선수·관계자들의 편협한 승부욕, 심판진의 석연찮은 판정 등도 지적되고 있다.
그중 축구행정을 담당하는 축구협회의 자세가 가장 문제. 현 축구협회는 대우그룹에서 파견된 인사들로 친정체제를 구축했으나 축구인들과의 갈등이 사사건건 표출되었고 문화단체의 특성을 무시하는 행정처리로 말미암아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심지어 김 회장은 대표팀 지원에만 급급한 나머지 타 단체들에 충격을 주는 파격적인 포상금 지급 등 집중 투자로 대외적인 공적을 쌓기에만 혈안이 돼버린 인상을 남겼다.「축구를 좋아하는 김 회장」은 이미 옛말이 돼버렸고 그의 측근들이 사업방편으로 축구를 이용한다는 비난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아무튼 협회 살림살이를 떠맡고 있는 김회장 친정체제가 축구인들에 대한 지나친 불신의 벽을 허물고 이들과 화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자세가 시급하다는 게 체육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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