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모두의 보편적 경험이라는 점에서는 학교도 그 못지않게 인기 있는 공포의 무대입니다. 고3 교실에 다시 앉아 시험범위도 모르는 채 시험지를 받는 악몽, 한번쯤 시달려 보셨을 겁니다.
이 점에서 지난주 개봉한 '디데이'는 꽤 설득력 있는 공포물입니다. 신인 감독의 저예산 HD영화지만 차분한 만듦새가 주목할 만합니다. 여학생 전용 기숙형 재수학원을 무대로, 미칠 듯한 입시의 중압감 때문에 정말로 조금씩 미쳐가는 모습을 점증하는 공포로 그려내지요. 이 학원은 한마디로'친절한 감옥'입니다. 곳곳에 24시간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입시준비 이외의 취미생활.개성표출은 곧바로 응징당합니다. 학원에서 몇 해 전 끔찍한 화재사건이 일어났다는 비밀도 비밀이지만, 강압적인 입시교육 환경이 고스란히 공포의 요소가 됩니다. 특히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경쟁심에 사로잡혀 돌변하는 대목은 공포의 절정입니다.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아릿한 슬픔마저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여고괴담'제1편(1998년)의 정서를 제대로 잇는 셈이죠.
그런데, 이 영화에는 '대학합격≠공포 끝'이라는 에필로그가 따라붙습니다. 입시보다 더한 공포가 있다는 얘기죠.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10일 개봉)는 그 답변 같은 영화입니다. 공포물 아닌 블랙코미디이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올 여름 본 어떤 공포물보다 훨씬 섬뜩했습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중년 가장이 재취업 전선에서 자기보다 돋보일 만한 경쟁자들을 차례로 죽이는 얘기입니다. 이 황당한 줄거리는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탁월하고 신랄한 은유로 발전하면서 설득력을 얻어갑니다. 속칭 '사오정'들의 살벌한 생존경쟁은 청년 백수의 취업경쟁 저리 가라는 수준으로 그려집니다. 미리 밝힐 수 없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직장생활을 제법 해본 관객이라면 뒷머리가 쭈뼛해질 정도입니다. 'Z''뮤직박스'같은 정치 스릴러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이름값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 푼 귀신이 덜 무서워지는 이유가 있군요. 현실이 그보다 몇 배나 무섭고 잔혹한 걸 알게 되니까요.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들기는 그래서 더 어려운 듯합니다.
이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