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표적 된 은행 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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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과 몇 해 전 만해도 외국의 갱 영화에서나 보던 은행강도사건이 올 들어 우리 사회에서 일상의 범죄처럼 잇따르고 있는 사실에 개탄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회일반의 상식으로 금융기관의 금고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의 범죄에서 보면 은행금고가 강도범들의 마음먹기에 따라 아무 때나 열리고, 털리고 있으니 과연 시민들이 안심하고 은행에 재산을 맡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올 하반기 들어서만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범죄사건은 7월 27일 중소기업은행 춘천지점의 17억원 도난사건, 7월31일 중소기업은행 안양지점 야간 침입미수사건, 8월1일 주택은행 대구 수성지점 수송 현금 4천만원 강탈사건, 8월1일 공주 농협 수송현금 7억원 강탈사건, 8월17일 부천 농협 수송현금 6천여 만원 강탈사건이 있었다. 지난 18일에도 국민은행 수원지점 매교 출장소에서 경찰관 복장의 30대 청년이 대낮에 공기총을 들고 들어가 8천만원을 털어 달아나는 등 한달 이 멀다하고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먼저 이같이 치안제도를 공공연히 비웃고 농락하는 강력 범죄의 범람이 사회전반에 미칠 심리적 파급영향을 심각히 우려한다.
아울러 당국의 책임을 거듭 강조하고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호 내무장관은 지난 7월 취임 일성으로『8월말까지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치안질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느끼는 피부감각으로 우리사회의 치안질서는 개선의 기미는 커녕 더욱 나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잇따른 은행강도·현금 탈취사건에서 경찰의 사전대비·수사는 범죄예방의 기능은 물론 재발방지의 효과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은행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경우 대부분 전문성을 가진 조직범죄이고 총기. 대형공구· 차량을 이용하는 고도의 기동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 경찰은 범죄조직의 감시, 총기 등 범죄이용 가능성이 있는 무기·도구의 관리, 도난차량의 파악과 추적, 전국적인 수사공조 등에서 범죄꾼들을 허둥지둥 뒤쫒는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뛰는 범죄에 기는 수사」의 형국이다.
우리는 사회 변화에 따라 범죄의 유형도 달라지고 이에 맞춰 경찰의 수사체제나 기법도 혁신되어야한다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바 있거니와 잇단 은행강도 사건에서 경찰이 효율적인 대처와 수사로 범죄재발 방지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데 대해 자체점검과 책임규명이 먼저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와 함께 이제부터라도 금융기관의 안전에 경찰과 금융기관이 공동의 대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
국내 대부분 금융기관의 일선 점포에서 자체 방범·안전대책이 범죄꾼들의 지능적 접근에 충분할 만큼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사실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확인됐다.
현금출납과 수송, 금고시설과 그 관리, 유사시 대응체제와 설비 등에서 많은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강력범들이 자주 이용하는 통장 예금인출 등 신종 수법에도 대책이 필요하다.
연말을 앞두고 또 언제 어디서 어떤 강력 범죄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시민들을 불안에 빠뜨릴지 알 수 없다. 경각심을 높이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수원사건을 계기로 은행금고의 안전만은 민심의 안정을 위해서도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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