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부터 이어온. 고유의 설렁탕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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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원기회복이나 입맛을 돋우는데는 뭐니뭐니해도 양지머리나 쇠족(우족)이 그만이다.
나이가 들면서 유명하다는 음식점은 다 찾아다녀 봤지만 그저 설렁탕하면 수원 시내 영동시장 모퉁이에 있는 천문옥(⑤7263)을 따를 곳이 없다.
이 집은 고작 10평 남짓한 곳에 주방과 목로방이 있을 뿐이지만 국자로 떠주는 뽀얀 뚝배기 국물 맛에 낮에는 줄을 서 한참을 기다려야 자리를 차지할 만큼 단골 손님이 많다.
일제시대부터 장사를 시작한 이 집은 내가 처음 다닐 때만해도 할머니가 주인이었는데 지금은 아들내외가 대를 이어 단골들에게 그 구수했던 「할머니 맛」을 듬뿍 떠주고 있는 것이다.
방안에 있는 통판으로 된 두 개의 상이 천문옥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내가 이 집을 단골로 다니는 까닭은 단순히 오래된 집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역사만큼이나 진한 국물 맛에 반했기 때문이다. 쇠뼈를 밤새도록 우려내는 데다 양지머리 을 쓰고 인공 조미료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파와 마늘에다 소금으로 간만 맞추면 입맛이 절로 돋게 마련이다.
여기에다 무와 배추를 상품으로만 골라 만드는 깍두기와 김치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설렁탕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 집에서는 설렁탕 말고도 우족탕이 일품이고 소 혀(우설)와 우랑, 양지머리 고기가 곁들인 수육이 또한 그럴싸해서 나 같은 술꾼들은 이래 거래 찾게 마련.
일요일 아침이면 역사 어린 수원성을 한바퀴 돌아 후줄근해진 몸으로 천문옥을 찾아 쇠등뼈로 곤 우거지 해장국을 한 뚝배기 들이켜다보면 어느덧 지난주의 피곤은 말끔히 사라지고 다가올 새 주에 대한 자신감이 솟구치는 것을 어쩌랴. <안익승><유네스코 경기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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