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쌀 북한에 보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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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몇 천년을 같은 식구처럼 한민족으로 살아오다 헤어져 살게된지 어언 45년.
어쩌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그것도 한 두 사람의 독재자 때문에 이제는 서로가 남의 국민들보다도 더 미워하고 헐뜯는 못난 꼴이 돼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마치 형제간에 사이가 나빠지면 남과의 원수사이보다 더 증오하는 것처럼 오늘날 한겨레의 분열은 역사의 비극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과오와 오류를 서로가 씻고 이제는 화해와 화합으로 남북통일을 이루어 적어도 우리들 후손들에게만은 슬픈 역사를 물려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이러한 기본관점에서 우리는 북한의 김일성 부자와 그 주위에서 아부하는 고위층 당 간부는 민족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미워할지라도 여타의 2천만 북한 동포들에게는 사랑과 애정을 가져야만할 것이다.
지금 북한주민들은 식량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60년대초, 우리가 아직도 보릿고개를 극복하지 못하고 가난했을 때부터 「청산리 협동농장의 황금벌에서 알곡생산 120 % 달성」이니 뭐니 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선전하였음에도 불구, 몇 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삶의 기본적 요소인 양곡수급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런저런 국내외 소식이나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다면 북한의 식량난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우선 성장기 연령층의 중등학교 학생들이 충분한 영양식을 못하여 평균신장이 떨어지자 「키 크기 운동」이라는 전대미문의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된다 하겠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쌓이기 시작하는 우리의 쌀을 북한의 어려운 주민들에게 보내는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함이 어떨까 한다. 이러한 운동은 정부주도로 해서는 안 된다. 북한당국은 겉으로는 받고싶어도 거절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적십자의 이름도 가능하겠으나 그것보다는 「북한주민들에게 너도나도 쌀 한줌씩」이라는 구호 아래 국민들 한사람 한사람의 정성으로 조금씩 거두어 전달하는 방법이다.
소련이나 헝가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안도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수해 때 북한이 양곡과 의료품을 우리에게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직접 전달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제부터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방도는 권력을 쥐고 있는 높은 양반들로부터 보다는 이렇게 민간 대 민간 접촉이 가능한 길을 열도록 하는 것이며 개방과 자유의 물결이 스며들도록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길이라 하겠다.
김동규 <고려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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