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교훈 잊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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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전력이 지난해 1년 동안 국내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정기점검을 안 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은 기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에 비해 비용이 덜 들고 대기오염의 공해가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방사능의 작용으로 인해 다른 어떤 연료에 비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시설과 관리의 안전성이 최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은 작년에 있었던 올림픽과 총선거 등 주요행사에 차질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6기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50여 차례의 안전점검을 해야 하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어물쩍 님긴 것은 요행을 기대한 무서운 모험이었다는 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론 아무 사고 없이 넘어가 천만 다행이긴 했으나 이 고의적인 책무의 소홀로 만의 하나 사태가 발생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할 때 등골이 오싹하는 전율과 공포를 금할 수 없다. 아무리 중요한 국제적 또는 국가적 행사일지라도 엄청난 사고와 이로 인한 막대한 피해의 가능성을 방치하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 미세한 것이었을지는 모르나 원전의 경우 1천만분의1의 확률도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지난 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자사고도 이상이 발견된 발전기를 정지시키지 않고 계속시험을 하다가 발전노 자체가 폭발함으로써 생겼던 것이다.
사전에 안전문제를 충분히 고려했더라면 예방될 수 있었던 인재였던 것이다. 물론 한국전력의 점검불이행이 발전기의 이상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원전의 가동을 정지할 우려가 있는 점검과 조작을 하지 말라」고 특별 지시했다는 것은 전력공급의 차질에만 신경을 쓰고 안전문제를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선례가 결코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자에 대한 문책이 있어야한다고 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작년 말 현재 총전력생산량의 47%를 원자력에 의존하여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9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며,2001년까지는 3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어서 에너지의 원자력 의존도는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우리 원전은 1년에 1기당 평균 7∼8회나 가동이 중단돼 일본의 0·3회, 미국의 5∼6회에 비해 고장률도 높은 편이다. 지난 78∼86년 사이 고리발전소에서 일어난 1백68건의 운전정지 원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시설 및 부품결함이 36%로 가장 많고 다음이 정상적인 점검과정을 빠뜨리거나 관리자의 훈련과 지식의 부족에서 일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또 IAEA와 미국 원전운전협회(INPO)는 지난 87년 우리 원자력발전소 운전원의 자질 부족을 제1의 문제점으로 경고한 적도 있다.
국내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비중은 자꾸 높아 가는데 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전문인력이 질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다 안전점검 마저 소홀히 하여 정부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정도라면 이는 원전의 안전, 나아가서는 국민의 생명과 환경보호차원에서 커다란 허점이 아닐 수 없다.
원전의 안전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일이다. 완벽하고 철저한 대비를 촉구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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