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방중을 보는 정부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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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김일성의 방중이 우리가 헝가리에 이어 폴란드와 수교하고 소련과의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따라서 김의 방중이 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앞으로 한중 관계 개선에 장애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전통적 우방이었던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개혁의 흐름 속에 등을 돌려 국제적으로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천안문 사태 이후 개혁 바람이 멈춰버린 중국과는 적어도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겠다는 점에서 동지적 입장을 느꼈을 것이다.
김은 바로 중국과 북한의 일치된 입장을 재확인하고 중국의 지지를 통해 북한 내부의 체제 도전 움직임에 쐐기를 박자는 계산을 했을 법하다.
특히 김은 방중 기간 중 등소평 등 중국 지도자들과 만나 한-중 관계 개선에 분명한 선을 그어 줄 것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김의 방중이 한중 관계 개선 속도를 늦추기는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천안문 사태 이후 대 서방 관계가 냉각되면서 한국과의 교역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한소 관계 개선 움직임에 지나치게 뒤떨어질 경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할 우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은 또 방중 기간 중 미-북한간 북경 접촉과 시거 전 미 국무차관보 등의 초청으로 대표되는 미-북한 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 중국 측과 상의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의 방중은 한국의 단독 유엔 가입을 저지하면서 한중 관계 개선 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개방 문제에 있어 중국과의 공동 보조 문제 등을 논의하는 다목적용이라고 볼 수 있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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