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도면 내라”…하청업체 '갑질'한 현대로템, 공정위 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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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이 만든 KTX 열차. 청와대사진기자단

현대로템이 만든 KTX 열차. 청와대사진기자단

일감을 쥐여주는 원사업자가 하청업체에게 "부품 도면을 보고 싶다"고 요구한다면? 하청업체 입장에선 ‘거래를 끊고 자체 기술로 부품을 만들려고 하나’ 혹은 ‘가격을 후려칠 부분이 없는지 들여다보나’ 같이 찜찜한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도 ‘갑을’ 관계인만큼 거절하기 쉽지 않다. 현대로템이 수년간 하청업체에게 해 온 일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중소 하도급업체에 기술 자료를 요구하며 요구 목적 등을 쓴 서면도 나눠주지 않은 현대로템에 시정 명령을 하고 과징금 16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현대로템은 지하철ㆍ기차 등 열차와 자동차 생산 설비, 군수품을 만드는 회사다.

공정위는 현대로템이 2014년 4월~2018년 6월 중소업체 45곳에 구두 또는 e-메일로 철도 및 자동차 생산설비와 관련한 부품 도면 등 기술자료 210건을 요구하며 사전에 권리 귀속 관계, 비밀유지 사항, 대가 등을 정한 서면을 나눠주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하도급법은 기술 탈취 등 우려 때문에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만 하청업체에 기술 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기술 자료를 요구하더라도 ①기술자료 명칭ㆍ범위, ②요구목적, ③비밀 유지 방법, ④기술 자료 권리의 귀속 관계, ⑤대가 및 대가 지급 방법, ⑥요구일ㆍ제공일ㆍ제공방법, ⑦요구가 정당함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 등 7개 항목을 구체적으로 적은 서면을 나눠주도록 했다.

안남신 공정위 기술유용감시팀장은 “정당한 이유 없는 자료 요구를 막고 기술 유용 행위를 미연에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의무를 어겼다”며 “기술자료 요구서 제도가 업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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